15번 문제
15.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 기철의 친척 기삼만이 권세를 믿고 불법으로 남의 토지를 빼앗았기에 정치도감에서 그를 잡아 장(杖)을 치고 하옥하였는데 20여 일 만에 죽었다. …… 그러자 정동행성 이문소에서 정치도감 관리들을 잡아 가두었다. |
① 농사직설을 편찬하는 학자
② 초량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
③ 도평의사사에서 회의하는 관리
④ 규장각 검서관으로 근무하는 서얼
⑤ 빈공과 응시를 준비하는 6두품 유학생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의 원 간섭기에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하였다.
기철은 원나라의 기황후의 오빠였다.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을 하였다.
① 농사직설을 편찬하는 학자
조선 세종 때 농사직설이 편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초량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
조선 후기인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도평의사사에서 회의하는 관리
고려 원 간섭기인 충렬왕 때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규장각 검서관으로 근무하는 서얼
조선 정조 때 규장각을 설치하고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빈공과 응시를 준비하는 6두품 유학생
신라의 골품 제도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원의 내정간섭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
| 원 간섭기 사회 변화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
| 고려 충목왕 |
|
| 조선 세종 |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장영실, 이천 등이 제작하였다.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토지 비옥도와 풍흉의 정도에 따라 전분6등법, 연분9등법으로 바꾸고, 조세 액수를 1결당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를 내도록 하는 공법을 실시하였다.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하였다. |
| 조선 후기 일본과의 관계 |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1607년 부산 두모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
|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
| 통일 신라 말 호족과 6두품의 성장 |
8세기 후반 이후, 진골 귀족들은 경제 기반을 확대하여 사병을 거느리고 권력 싸움을 벌였다. 중앙 귀족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 연합적인 정치가 운영되었다. 지방 세력들도 왕위 쟁탈전에 가담하여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였다. 호족들은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자기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여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고 칭하면서 그 지방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였다.
6두품 출신들은 신라 중대에 왕의 정치적 조언자로 활동하였다. 당에 유학하였다가 돌아온 6두품 출신의 일부 유학생과 선종 승려 등은 신라 골품제 사회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들도 진골 귀족에 의하여 자신들의 뜻을 펼 수 없게 되자, 은거하거나 지방의 호족 세력과 연계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하였다. 강수, 설총, 최치원은 대표적인 6두품 출신이었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65회 한능검 심화 해설 1번 ~ 50번
- 65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청동기 시대
- 65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고조선
- 65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공주(웅진) 지역의 역사
- 65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호우총 그릇
- 65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고구려 고국원왕 사망
- 65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백제 멸망, 나당 전쟁
- 65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발해
- 65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설총
- 65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통일 신라 말의 정치 변동
- 65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고려 태조
- 65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고려 성종, 시무 28조
- 65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거란의 침입
- 65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 의천
- 65회 한능검 심화 14번 문제 – 무신정변, 이자겸의 난, 서경 천도 운동
- 65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후기
- 65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시대 경제
- 65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고려 주심포 건축
- 65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고려 요동 정벌
- 65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성종
- 65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조선 명종, 을사사화
- 65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계유정난
- 65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몽유도원도
- 65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병자호란
- 65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조선 정조
- 65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대동법
- 65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대마도 정벌, 일본 원정, 진포 해전, 임진왜란
- 65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성호 이익
- 65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조선 후기
- 65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고종 즉위, 척화비 건립
- 65회 한능검 심화 30번 해설 – 임오군란
- 65회 한능검 심화 31번 해설 – 동학 농민 운동
- 65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헤이그 특사 파견
- 65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정미의병, 13도 창의군
- 65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아관파천
- 65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상권 수호 운동,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 65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독립 협회
- 65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근대 문물의 수용
- 65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일제 무단 통치
- 65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시대별 교육 기관
- 65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제2차 조선 교육령
- 65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65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65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조선 의용대
- 65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최현배
- 65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5.10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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