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번 문제
37. (가)~(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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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 간행되었다.
② (나) –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이다.
③ (다) – 백동화가 주조되었다.
④ (라) –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⑤ (마) – 나운규의 아리랑이 처음 상영된 곳이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① (가)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 간행되었다.
개항 후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이후 최초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인 기기창을 세웠다.
박문국에서 최초의 근대 신문은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나) –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이다.
1885년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하였다.
환구단(원구단)에서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다) – 백동화가 주조되었다.
박문국에서 최초의 근대 신문은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전환국에서 새로운 화폐인 백동화를 주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라) –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1905년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마) – 나운규의 아리랑이 처음 상영된 곳이다.
1908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졌고, 은세계, 치악산 등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화재로 소실됐다.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은 1926년에 제작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1885년 서울-인천, 서울-의주 전신선이 가설되었다.
1884년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근대적 우편 제도를 실시하려 했으나 갑신정변 이후 중단되었다. 정부가 우체사를 설립하면서 우편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1900년부터는 국제 우편 업무(만국 우편 연합 가입)도 실시하였다.
1898년 경운궁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덕률풍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887년 경복궁에 최초로 전등을 설치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 전기 회사인 한성 전기 회사가 설립되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기 사업을 주도하였다. 묘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1899년 한성 전기 회사는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운행하였다.
경인선(1899년),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이 차례로 개통되었다. 철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1885년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이후 제중원으로 개칭)을 설립하였다. 제중원은 나중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건의로 정부가 관립 의학교와 광제원(1900년)을 설립하였는데, 광제원은 대한 의원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1883년 박영효의 주도로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1883년 기기창에서 서양 무기를 제조하였다.
1883년 전환국에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였다.
독립문은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건립되었다.
르네상스식의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1898년 중세 고딕식의 건물인 명동 성당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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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한양에서 처음 지어진 궁궐이다. 정도전이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정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경복궁 경내에 조선 총독부 청사가 세워졌다. 1915년 일제는 경복궁에서 조선 물산 공진회를 개최하였다.
경복궁의 대표적인 건물로 국가의 중요 의식이 거행된 곳이다. 근정전의 뜻은 ‘나랏일을 부지런히 하라’는 것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이다.
태종이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다시 옮기며 별궁으로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정궁 역할을 했다. 궁궐의 후원은 조선의 정원 조경을 잘 보여준다. ‘동궐’로도 불리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주요 건물로 돈화문, 인정전,선정전, 대조전 등이 있다. 부속 건물로 정조의 개혁을 뒷받침해 준 규장각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동물원으로 운영되었다.
정문으로 대한문이 있다. 황제의 집무실 용도로 석조전을 지었다. 198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 환궁했다. 1905년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1946년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되었다.
경희궁은 도성 내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 불렸다.
한양 도성의 남문이다. 남대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조선 왕실의 사당이다.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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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문예와 종교 |
최남선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되었다.
순 한글을 사용하여 언문 일치의 문장으로 쓰여진 신소설이 등장하였다. 신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인직의 혈의 누, 이해조의 자유종 등이 있다.
1908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졌고, 은세계, 치악산 등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화재로 소실됐다.
개신교는 1880년대에 서양 선교사의 입국을 계기로 교세를 넓혀 갔다.
천주교는 프랑스와의 수교로 포교의 자유를 인정받은 이후 소학교, 고아원, 양로원 등을 세웠으며, 경향신문을 발행하였다.
불교에서는 한용운이 조선 불교 유신론을 내세우며 불교의 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주장하였다.
유교에서는 박은식이 유교 구신론을 제창하면서 근대 교육과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김창숙의 주도로 유림들이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 독립을 위한 독립청원서를 보냈다.
나철, 오기호 등은 단군 신앙을 발전시켜 대종교를 창시하였다.
대한 제국 시기에 이용구 등 친일파가 일진회를 조직하고 동학 조직을 흡수하려 하자,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동학의 정통을 계승하여 민족 종교로 발전시켰다. 천도교는 만세보라는 민족 신문을 발간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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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조선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이육사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토월회는 1923년 5월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박승희·김복진·김기진·이서구·박승목·김을한·이제창 등이 조직하였다.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년)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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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관립 상공 학교를 설립하여 실업 교육을 실시하였다.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1899년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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