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평양 지역의 역사

11번 문제

11.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① 정몽주가 이방원 세력에게 피살되었다.

②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고 국호를 대위라 하였다.

③ 몽골의 침략으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소실되었다.

④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되었다.

⑤ 정서가 유배 중에 정과정이라는 고려 가요를 지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의 지역은 평양이다.

고려시대 평양은 서도, 서경, 호경 등으로 불렸다.

고려 무신 집권기인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동녕부는 원나라가 고려의 원 간섭기에 평양에 설치한 통치 기구이다.

 

① 정몽주가 이방원 세력에게 피살되었다.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고 국호를 대위라 하였다.

1135년 고려 인종 때 묘청은 서경(평양)에서 난을 일으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몽골의 침략으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소실되었다.

황룡사 구층 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경주에 지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되었다.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정서가 유배 중에 정과정이라는 고려 가요를 지었다.

정서가 부산에서 유배 중에 정과정이라는 고려 가요를 지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평양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

고구려 궁궐 ‘안학궁’

고구려 멸망 후 안동도호부 설치

고려 태조,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

고려시대 평양은 서도, 서경, 호경 등으로 불렸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묘청의 난

무신 정권 당시 ‘조위총의 반란’

고려 원 간섭기에 통치 기구인 동녕부 설치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이 왜군과의 격전

제너럴 셔먼호 사건

물산 장려 운동 시작 지역 – 조만식, 조선 물산 장려회 조직

안창호가 대성 학교를 설립

김구, 김규식이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

6·15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된 장소

1931년 평원고무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강주룡이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다.

주요 유적지: 대성산성, 안학궁지, 을밀대, 만수대

물산 장려 운동 포스터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이연년 형제의 난

1237년, 고려 고종 때 원율과 담양 지역에서 이연년 형제가 봉기를 일으켰다. 김경손이 이를 진압했다.

원의
내정간섭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 원의 일본 원정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 정동행성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 관제 변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 영토 상실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 공녀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 응방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 부마국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고려
서경 천도 운동
  • 서경 천도 운동

고려 인종 시기 묘청·정지상 세력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했다.

서경에 대화궁이라는 궁궐을 짓고, 황제를 칭할 것과 금을 정벌하자고 주장하였다.

 

  • 묘청의 난

서경 천도를 통한 정권 장악이 어렵게 되자 묘청 세력은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1135년).

이들은 나라 이름을 ‘대위국’이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였다.

하지만 김부식이 이끈 관군의 공격으로 약 1년 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 이 사건은 실제로 낭가와 불교 양가 대 유교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 이것을 어찌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 신채호 –

신라
선덕 여왕
  • 자장의 건의에 따라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
  • 첨성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
  •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유신이 진압
경주 신라의 도읍지였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의 건의에 따라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했다.

신라 선덕여왕 시기,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킨 곳이다.

포석정 – 신라 시대에 왕과 신하가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포석정

토함산

불국사

불국사

다보탑

3층 석탑

석굴암 본존불

동궁과 월지(안압지)

분황사 모전 석탑

천마총과 천마도

첨성대

호우명(호우총) 그릇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 몽골의 1차 침입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 몽골의 2차 침입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 몽골의 5차 침입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 피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 개경 환도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고려 원종 때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 삼별초의 항쟁

1270년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고려
인쇄술
  • 목판 인쇄술

신라 때부터 발달한 목판 인쇄술은 고려 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달하였다. 고려대장경의 판목은 고려의 목판 인쇄술이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목판 인쇄술은 한 가지의 책을 다량으로 인쇄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여러 가지의 책을 소량으로 인쇄하는 데에는 활판 인쇄술보다 못하였다. 따라서, 고려에서는 일찍부터 활판 인쇄술의 개발에 힘을 기울였으며, 후기에 금속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였다.

 

  • 금속 활자 인쇄술

고려 시대에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 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것은 목판 인쇄술의 발달, 청동 주조 기술의 발달, 인쇄에 적합한 먹과 종이의 제조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 상정고금예문

12세기 말이나 13세기 초에는 이미 금속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었으리라고 추측되며, 몽골과 전쟁 중이던 강화도 피난시에는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다(1234). 이는 서양에서 금속 활자 인쇄가 시작된 것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다.

상정고금예문은 12세기 인종 때 최윤의 등이 지은 의례서인데, 강화도로 천도할 때 예관이 가지고 오지 못하여 최우가 보관하던 것을 강화도에서 금속 활자로 28부를 인쇄하였다.

 

    • 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심체요절(137년)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받고 있다.

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 – 현존 최고 금속 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

통일 신라 민정 문서

민정 문서(서원경(청주) 부근 촌락)

개성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

선죽교 –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정몽주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에 의해 살해를 당한 곳이다.

선죽교

공민왕릉

만월대 – 고려의 궁궐터

개성공단

고려 첨성대

만적의 난

송상 – 조선 후기 사상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 후에 당시 수도인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였다.

국자감(나중에 성균관으로 개편) – 고려의 최고 교육 기관

만부교 사건 –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무산정

부산 고려시대 정서가 부산에서 유배 중에 정과정이라는 고려 가요를 지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다.

1609년 일본과의 기유약조 체결 이후 초량에 왜관이 지어졌다.

범어사가 있다.

독립 협회가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시켰다.

부산항은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이 부산의 백산 상회를 통하여 전달되었다.

1920년 의열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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