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문제
17.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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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신숭겸이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② 최승로가 왕에게 시무 28조를 올렸다.
③ 김방경의 군대가 탐라에서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④ 강감찬이 개경에 나성을 축조할 것을 건의하였다.
⑤ 경대승이 정중부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가)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하였다.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켰다.
(나)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을 종결했다.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았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가 되었다. 또한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했다.
① 신숭겸이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켰다(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최승로가 왕에게 시무 28조를 올렸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 이전, 고려 성종 때 최승로가 왕에게 시무 28조를 올렸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김방경의 군대가 탐라에서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270년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탐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방경의 군대가 탐라에서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강감찬이 개경에 나성을 축조할 것을 건의하였다.
거란의 고려 침입 이후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경대승이 정중부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고려와 몽골과의 전쟁 이전, 무신 정변이 발생하고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고려 몽골의 침입 |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고려 원종 때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1270년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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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의 내정간섭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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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간섭기 사회 변화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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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삼국 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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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성종 |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 정치사상을 통치의 근본 이념으로 삼고 여러 제도의 정비를 요구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한 2성 6부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관제도 새로 마련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
지방관을 파견하고 향리 제도를 마련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
국자감을 정비하고, 지방에 경학 박사와 의학 박사를 파견하여 유학 교육의 진흥에 노력
태조 때 설치됐던 흑창이 의창으로 개칭, 확대
물가를 조절하여 빈민을 구제하던 기관인 상평창 설치
철전인 건원중보가 만들어짐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
광종 때 노비안검법으로 노비에서 양인이 된 자를 노비로 다시 환원하는 법을 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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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무신정권기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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