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번 문제
30.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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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②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③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④ 일본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⑤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1882년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①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876년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1871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일본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후,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으며,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었다.
1880년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 임오군란 |
구식 군대는 군제 개혁 후에 설립된 신식 군대(별기군)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았다.
13개월 만에 급료로 지급된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이에 분노한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1882년). 이들은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였다. 한성 주변의 도시 하층민까지 합세하면서 군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군란 세력은 경복궁까지 쳐들어가 민겸호 등 민씨 일파를 처단하고 민씨 일파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왕비를 찾았으나 왕비는 이미 피신한 상황이었다.
고종이 흥선 대원군에게 군란의 수습을 맡기면서 흥선 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개화 정책은 중단되었다.
민씨 세력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이 군란을 진압한 후, 흥선 대원군을 군란의 책임자로 지목하여 강제로 데려갔다
민씨 세력은 다시 권력을 잡았다. 다시 집권하게 된 민씨 일파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친청 정책으로 기울어졌다.
일본은 조선 내의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군대 파견을 했으며,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물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하였다(1882년).
청은 이후 조선의 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였다. 곧, 위안 스카이 등이 지휘하는 군대를 상주시켜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하여 조선의 내정과 외교 문제에 깊이 간여하였다.
또, 조선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체결로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허용하게 되고, 경제적 침략을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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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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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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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화비 건립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건립했다(1871년).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대외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막았으나, 한편으로는 조선의 근대화를 지연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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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 정책의 추진 |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하지만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은 폐지되었다(1882년).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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