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한능검 심화 47번 48번 해설 – 역대 군사 조직

47번, 48번 문제

[47~48]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47. (가)~(라) 군사 조직을 만들어진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① (가) – (나) – (다) – (라)

② (가) – (나) – (라) – (다)

③ (나) – (가) – (라) – (다)

④ (나) – (다) – (가) – (라)

⑤ (나) – (라) – (나) – (가)

 

48.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②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하였다.

③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④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⑤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47번 해설

(가) 통일 신라 시대에 조직된 9서당 10정에 대한 내용이다.

(나) 고려의 군사 조직이었던 2군 6위에 대한 내용이다. 2군은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였다.

(다) 개항 후 개화 정책 추진의 과정에서 조직된 2영에 대한 내용이다.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라) 조선 숙종 때 국왕의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금위영을 창설하였다.

 

정답은 ②번이다.

 

48번 해설

통일 신라 신문왕 때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했다.

 

①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였다.

신문왕은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하였다.

신라 법흥왕은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조선 효종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려 태조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고려 공민왕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
  • 감은사 건립
고려 군사 제도
  • 고려의 군사 제도

고려의 군사 제도는 중앙군과 지방군의 이원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 중앙군

중앙군은 국왕의 친위 부대인 2군과 수도 경비와 국경 방어를 담당하는 6위로 구성되었다.

중앙군은 직업 군인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군적에 올라 군인전을 지급받고 그 역은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2군은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였다.

 

  • 지방군

군적에 오르지 못한 일반 농민으로 16세 이상의 장정들은 지방군으로 조직되었다.

지방군은 국경 지방인 양계에 주둔하는 주진군과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하는 주현군으로 이루어졌다.

개화 정책의
추진
  • 통리기무아문 설치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하지만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은 폐지되었다(1882년).

 

  • 군사 제도 개편
    • 2영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 별기군 창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 근대 시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조선 후기
붕당 정치와
탕평론의 대두
조선 숙종
  • 탕평론의 대두

숙종은 인사 관리를 통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파에게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 관리로 일관하여 환국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 경신환국(1680년)

숙종 초 정권을 장악한 남인을 견제하고자 했던 숙종은 남인의 역모 사건 등을 계기로 남인을 처벌하고 서인으로 급격히 정권을 교체시켰다. 허적과 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되었다. 이를 경신환국이라 한다. 서인이 주도권을 가졌다. 경신환국 이후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다.

  • 기사환국(1689년)

숙종은 장희빈의 아들을 적장자로 인정하여 원자로 삼으려 하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서인을 대거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면서 남인이 정권을 잡은 기사환국이 일어났다. 남인이 주도권을 가졌다. 제주도로 유배를 간 송시열이 사형을 당했다.

  • 갑술환국(1694년)

숙종은 인현왕후를 다시 맞아들이고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을 교체시켰다. 이를 갑술환국이라 한다. 서인(노론과 소론)이 주도권을 가졌다.

  • 금위영 설치

숙종 때 국왕의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금위영을 창설하였다.

신라
법흥왕
  • 병부의 설치, 율령 반포, 공복의 제정
  • 6세기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 때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
  • 골품 제도를 정비
  • 진골 귀족 회의의 대표자인 상대등을 두어 중앙 집권 국가의 모습을 갖춤
  •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
  • 532년 이사부에 명하여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
  • 17관등제를 완비
호란의 발발과
북벌 운동
  • 정묘호란(1627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마침 조선에서 이괄의 난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해지자, 후금은 광해군을 위하여 보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쳐들어왔다(1627년). 이를 정묘호란이라 한다.

정봉수(용골산성)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맞아 싸웠다. 후금의 군대는 보급로가 끊어지자 강화를 제의하여 화의가 이루어졌다.

 

  • 병자호란(1636년)

세력을 더욱 확장한 후금은 군신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였고, 국호를 청이라 고친 다음 친명배금을 명분으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왔다(1636년). 이를 병자호란이라 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청군에 대항하고 김준룡이 광교산 전투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주화파인 최명길 등의 주장과 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삼전도의 굴욕).

 

  • 북벌 운동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에 당한 수치를 씻고, 임진왜란 때 도와 준 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 청에 복수하자는 북벌 운동이 전개되었다.

청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효종은 북벌을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았다. 효종은 송시열, 이완 등과 함께 남한산성 및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군대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 나선 정벌(1654년, 1658년)

만주 북부의 헤이룽 강 부근에 러시아가 침략해 오자, 청은 이를 물리치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 효종은 두 차례에 걸쳐 변급과 신유가 지휘하는 조총 부대를 출병시켜 큰 전과를 올렸다. 이를 나선 정벌이라고 한다.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 철령 이북의 땅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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