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박제가

27번 문제

27.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세계 지리서인 지구전요를 저술하였다.

② 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③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④ 서자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

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후기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① 세계 지리서인 지구전요를 저술하였다.

최한기가 저술한 지구전요는 국외의 각종 지리서를 참조하여 편찬한  세계지리서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홍대용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론을 내놓았는데, 당시로서는 대담한 주장이었다. 이리하여 조선 후기의 천문학은 전통적 우주관에서 벗어나 근대적 우주관으로 접근해 갔다.

그리고 <의산문답>을 저술하여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정약용은 서양 선교사가 중국에서 펴낸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만들었는데, 이 거중기는 수원 화성을 쌓을 때에 사용되어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공사비를 줄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서자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

조선 정조 때 서얼 출신 박제가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하였다.

박지원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조선 후기
상공업 중심 실학
  • 이용후생 학파(중상 학파, 북학파)

18세기 후반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주장하는 실학자가 나타났다.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하였으므로 이들을 이용후생 학파 또는 북학파라고도 한다.

북학파

청의 수도 베이징을 왕래하면서 청의 수준 높은 문물을 목격하고, 이를 수용하자고 주장한 실학자들을 말한다.

 

  • 유수원

상공업 중심 개혁론의 선구자는 18세기 전반의 유수원이었다. 그는 <우서>를 저술하여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강조하고, 사농공상의 직업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 홍대용

홍대용은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의 혁신과 문벌 제도의 철폐, 그리고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 박지원

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하고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면서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양반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 박제가

박지원의 실학 사상은 그의 제자 박제가에 의하여 더욱 확충되었다.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는 상공업의 발달,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을 역설하였다. 또, 생산과 소비와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조선 후기
천문학과 지도
  • 천문학

천문학은 서양 과학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전하였다.

 

    • 김석문

김석문은 지전설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주장하여 우주관을 크게 전환시켰다.

 

    • 홍대용

홍대용은 과학 연구에 힘썼으며, 김석문과 함께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지전설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론을 내놓았는데, 당시로서는 대담한 주장이었다. 이리하여 조선 후기의 천문학은 전통적 우주관에서 벗어나 근대적 우주관으로 접근해 갔다.

<의산문답>을 저술하여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주해수용을 저술하여 조선ㆍ중국ㆍ서양 수학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였다.

지구가 9만 리를 한 바퀴 도는데 그 회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런데 저 별들과 지구와의 거리가 겨우 절반이라도 몇 천만, 몇 억 리나 될지 알 수 없다. 하물며 별 밖에 또 별이 있음에랴. 우주 공간에 한계가 없다면, 별이 분포하는 영역에도 한계가 없다. 그 별들이 한 바퀴 돈다고 말한다 해도 그 궤도의 둘레가 얼마나 길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하루에 얼마나 빨리 회전할지 상상해본다면, 천둥·번개와 포탄의 속도를 계산하더라도 이보다 빠르지는 못할 것이다.

<의산문답>

 

    • 시헌력

역법은 김육 등의 노력으로 시헌력이 도입되었다. 이는 서양 선교사인 아담 샬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것으로 청에서 사용되고 있었는데, 종전의 역법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한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약 60여 년 간의 노력 끝에 시헌력을 채용하였다.

시헌력(時憲曆)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부합시켜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히 계산하여 만든 역법

 

    • 곤여만국전도

조선 후기에 서양 선교사가 만든 곤여만국전도 같은 세계 지도가 중국을 통하여 전해짐으로써 지리학에서도 보다 과학적이고 정밀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지도 제작에서도 더 정확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를 통하여 당시 조선인의 세계관이 확대될 수 있었다.

 

    • 지구전요

최한기가 저술한 지구전요는 국외의 각종 지리서를 참조하여 편찬한  세계지리서이다.

조선 후기
의학, 농학,
기술 개발
  • 의학

허준의 <동의보감> – 17세기 초에 허준은 동의보감을 저술하여 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은 우리의 전통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뛰어난 의학서로 인정되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 – 허임은 침구경험방을 저술하여 침구술을 집대성하였다.

정약용의 <마과회통> – 정약용은 마진(홍역)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키고 이 분야의 의서를 종합하여 마과회통을 편찬하였으며, 박제가와 함께 종두법을 연구하여 실험하기도 하였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 19세기에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여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이는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구분하여 치료하는 체질 의학 이론으로, 오늘날까지도 한의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 농업

신속의 <농가집성> – 17세기 중엽에 신속은 농가집성을 펴내 벼농사 중심의 농법을 소개하고, 이앙법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 19세기에 서유구는 농업과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종합하여 임원경제지라는 농촌 생활 백과 사전을 편찬하였다.

 

  • 기타

박세당은 색경을, 홍만선은 산림경제를, 서호수는 해동농서를 저술하여 농업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기술

정약용은 서양 선교사가 중국에서 펴낸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만들었는데, 이 거중기는 수원 화성을 쌓을 때에 사용되어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공사비를 줄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정약용은 정조가 수원에 행차할 때 한강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배다리도 설계하였다.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의 발달
  • 한글 소설의 보급

허균의 홍길동전, 춘향전 등. 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등장했다.

세책가에서 도서를 대여했다.

  • 판소리

판소리 작품으로는 열두 마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등 다섯 마당만 전하고 있다. 신재효는 19세기 후반에 이런 판소리 사설을 창작하고 정리하였다.

  • 탈놀이

탈놀이와 산대놀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이런 가면극에서는 지배층과 그들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 사설 시조

이 시기의 시조에는 서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경향이 나타났다.

  • 시사(詩社) 조직

역관 등 중인층과 서민층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호인들이 모여 시사를 조직하였다.

  • 정약용

정약용은 삼정의 문란을 폭로하는 한시를 남겼다.

  • 박지원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한문 소설을 써서 양반 사회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실용적 태도를 강조하였다.

  • 회화

회화에서는 그 저변이 확대되어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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