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시대 경제

12번 문제

12. 다음 자료에 나타난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솔빈부의 말을 특산물로 수출하였다.

②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을 운영하였다.

③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④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활동하였다.

⑤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교역을 재개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의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들었다.

고려시대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임시 기구였으나,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개편되었다.

 

① 솔빈부의 말을 특산물로 수출하였다.

발해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을 운영하였다.

고려 시대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서적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두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통일 신라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민영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교역을 재개하였다.

조선 후기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1609년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서적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고려
중앙 정치 조직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에 마련한 2성 6부제를 토대로 하였다. 고려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하였다.

 

중서문하성

  • 중서문하성은 고려의 최고 관서로서,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 중서문하성은 재신과 낭사로 구성되었다. 재신은 국가의 정책을 심의하고, 낭사는 정치의 잘못을 비판하였다.
  • 낭사는 어사대의 관원과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 재신은 중추원의 추밀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상서성

  • 상서성은 실제 정무를 나누어 담당하는 6부를 두고 정책의 집행을 담당하였다.
  • 6부 – 6부에는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가 소속되어 있었다.

 

중추원

  • 송의 제도를 본따 만든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다.
  • 군사 기밀을 담당하면서 재신과 함께 국정을 총괄하는 추밀과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승선으로 구성되었다.
  • 추밀은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함께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구성원이었다.

 

삼사

  • 삼사는 송나라와 달리, 단순히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만 맡았다.

 

어사대

  •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렸다.

 

대간

  • 대간은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된다.
  • 왕의 잘못을 논하는 간쟁과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보내는 봉박, 관리의 임명과 법령의 개정이나 폐지 등에 동의하는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다.

 

도병마사

  • 도병마사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였다.
  •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임시 기구였으나,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개편되면서 구성원이 확대되고 국정 전반에 걸친 중요 사항을 담당하는 최고 정무 기구로 발전하였다.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또한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식목도감

  • 식목도감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곳이었다.
  • 식목도감은 임시 기구로서 국내 정치에 관한 법의 제정이나 각종 시행 규정을 다루던 회의 기구였다.
  • 이러한 회의 기구의 존재는 고려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또한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발해 경제
  • 목축

솔빈부의 말은 주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 무역

발해의 수출품은 주로 모피,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 자기 등 수공업품이었다. 수입품은 귀족의 수요품인 비단, 책 등이었다.

거란도, 영주도를 통해 주변국과 교역하였다.

통일 신라 경제
  • 민정(촌락) 문서 – 촌락의 토지 크기, 남녀별·연령별의 정확한 인구 수, 소와 말의 수, 토산물 등을 파악하는 문서를 만들고, 조세, 공물, 부역 등을 거두었으며, 변동 사항을 조사하여 3년마다 문서를 다시 작성

신라 민정(촌락) 문서

  • 상품 생산이 늘어나 이전에 설치된 동시만으로는 상품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서시와 남시를 설치
  •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슬람 상인이 울산에까지 와서 무역
  • 당항성, 영암은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
  •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남해와 황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 중국 산둥반도에 적산 법화원 설립.
  • 산둥 반도와 양쯔 강 하류에 신라인의 거주지인 신라방과 신라촌, 신라인을 다스리는 신라소, 여관인 신라관, 절인 신라원이 만들어짐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증가
  • 정부 독점 채굴

광산은 본래 정부가 독점하여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였다.

  • 민영 광산 채굴 허용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점수세제

조선 후기 정부 주도로 설점(設店)하여 광물 채굴을 허가하고 세금을 거둔 제도

 

  • 잠채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 덕대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덕대(德大)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광물을 채굴하여 광산을 경영하는 사람

조선 후기
일본과의 관계
  • 일본의 국교 요청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 조선인 포로 송환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1607년 부산 두모포에 정왜관이 설치되었다.

 

  • 기유약조

조선은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 통신사 파견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 을릉도와 독도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