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 문제
28. 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의 사회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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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이 설치되었다.
②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③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었다.
④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⑤ 안동 김씨 등의 세도 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62년 조선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①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이 설치되었다.
고려 태조는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을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889년 통일 신라 시기에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었다.
1361년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고려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고려의 원 간섭기 때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안동 김씨 등의 세도 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조선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것을 세도 정치라고 한다.
정조가 죽은 후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행사하였다.
철종 때에 이르러 안동 김씨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 임술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1862년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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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세도 정치 |
정조의 탕평 정치로 말미암아 왕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은 결과적으로 세도 정치의 빌미가 되었다.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것을 세도 정치라고 한다. 정조가 죽은 후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행사하였다.
안동 김씨 – 순조가 11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김조순이 왕의 장인이 되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안동 김씨는 철종 때에도 세도를 누렸다. 풍양 조씨 – 헌종 이 8세로 즉위하자, 왕의 외조부인 조만영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순조가 11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영조의 계비 정순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조 때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노론 벽파 세력이 정국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신유박해를 이용하여 정조가 규장각을 통하여 양성한 인물들을 몰아냈고, 장용영을 혁파하고 훈련도감을 정상화시켜 이를 장악하였다.
정순 왕후가 죽고 벽파 세력이 퇴조하고, 순조의 장인 김조순을 중심으로 하는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 정치가 전개되었다. 김조순은 반남 박씨와 풍양 조씨 등 일부 유력 가문의 협력을 얻어 정국을 주도하였다.
순조 말년에는 효명 세자가 대리청정을 통하여 세도가들을 견제하고 권력 집단을 결집하려 했으나 갑자가 죽음으로써 실패하였다.
헌종이 즉위하면서 헌종의 외척인 풍양 조씨 가문이 득세하였다.
철종 때에 이르러 안동 김씨 세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였다. 결국 안동 김씨 중심의 세도 정치는 흥선 대원군이 정국을 주도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권력 구조에서 고위직만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고, 그 아래의 관리는 언론 활동 같은 정치적 기능을 거의 잃은 채 행정 실무만 맡게 되었다. 비변사가 핵심적인 정치 기구로 자리잡았으며, 유력한 가문 출신의 몇몇이 실제 권력을 행사하였다.
19세기의 세도 정권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 가려는 능력도 지니지 못하였다. 세도 정권은 정조가 등용하였던 재야 세력인 남인, 소론, 지방 선비들을 권력에서 배제하여 사회 통합에 실패하였다. 향촌에서는 지방 사족을 배제한 채 수령이 절대권을 가지고 조세를 거두도록 하였다. 세도 정치기에는 관직이 매매되는 등 비리가 만연하였으며, 탐관오리들의 부당한 조세 수탈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였다. 더욱이 자연 재해가 잇따르고 기근과 질병이 널리 퍼졌으며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였으나 농민의 조세 부담은 더욱 무거워져 농촌 사회의 불만은 극에 달하였다.
세도 정치하에서는 정치의 도리가 지켜지지 않고, 관리의 기강이 무너지면서 관직을 사고 파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감사 자리는 보통 5만~6만 냥, 수령 자리는 2만~3만 냥 정도에 거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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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태조 |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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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
통일 신라 말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768년 혜공왕 때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각간들이 군사를 일으켜 권력 다툼을 벌였다.
혜공왕이 죽고 즉위한 선덕왕이 죽자 원성왕이 즉위하였다(785년).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37년이 흐른 뒤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822년).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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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건적의 침입 | 1361년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의 무인 세력이 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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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간섭기 사회 변화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호복),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69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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