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 문제
15.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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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창설되었다.
② 원의 요청으로 일본 원정에 참여하였다.
③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편성되었다.
④ 진도에서 용장성을 쌓고 몽골에 대항하였다.
⑤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삼별초는 고려 무신 집권자인 최우가 창설한 군사 조직이다.
①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창설되었다.
조선 인조 때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어영청이 창설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원의 요청으로 일본 원정에 참여하였다.
고려가 몽골과의 전쟁 이후 강화를 맺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삼별초의 난을 진압했던 김방경이 이끄는 군대가 일본 원정에 참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편성되었다.
고려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하였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진도에서 용장성을 쌓고 몽골에 대항하였다.
배중손이 이끈 삼별초는 장기전을 펴기 위하여 진도로 옮겨 용장성을 쌓고 저항을 계속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였다.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2군은 고려의 국왕의 친위 부대인 중앙군이다.
고려의 군사 제도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이원된 2군 6위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 고려 몽골의 침입 |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고려 원종 때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1270년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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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무신정권기 |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희종 때 설치된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1198년, 고려 신종 때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1237년, 고려 고종 때 원율과 담양 지역에서 이연년 형제가 봉기를 일으켰다. 김경손이 이를 진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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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군사 제도 |
임진왜란 초기에 어이없는 패전을 경험한 조정에서는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왜군을 물리치는 데 효과적인 편제와 군사 훈련 방식을 모색. 그 결과, 훈련도감을 설치 훈련도감의 군병은 삼수병(포수, 사수, 살수)으로 편성, 이들은 장기간 근무를 하고 일정한 급료를 받는 상비군으로서, 의무병이 아닌 직업 군인의 성격을 가진 군인
인조 때 이괄의 난과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국방력 강화를 명분으로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등이 설치되었고, 숙종 때에 금위영이 추가로 설치되어 17세기 말에는 5군영 체제가 갖추어졌다.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조선 초기에 실시되던 진관 체제는 많은 외적의 침입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에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제승방략 체제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제승방략 체제가 임진왜란 중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진관 체제를 복구하고 속오법에 따라 군대를 편제하는 속오군 체제로 정비하였다. 속오군은 위로는 양반에서부터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향촌 사회를 지키다가 적이 침입해 오면 전투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양반이 노비와 함께 속오군에 편제되는 것을 회피함에 따라 상민과 노비들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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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의 내정간섭 |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고려 충렬왕 때 두 차례 실시된 원의 일본 원정에 군대와 물자의 제공
원은 일본 원정을 계기로 고려에 설치한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간섭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
철령 이북에 쌍성총관부, 자비령 이북에 동녕부, 제주도에 탐라총관부라는 원의 통치 기구 설립
원은 공녀라 하여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고려의 처녀들을 뽑아감
매를 징발하기 위해서 응방이라는 특수 기관을 설치
고려의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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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여진 정벌 |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
별무반 –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 1115년, 예종 때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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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군사 제도 |
고려의 군사 제도는 중앙군과 지방군의 이원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중앙군은 국왕의 친위 부대인 2군과 수도 경비와 국경 방어를 담당하는 6위로 구성되었다. 중앙군은 직업 군인으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군적에 올라 군인전을 지급받고 그 역은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2군은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였다.
군적에 오르지 못한 일반 농민으로 16세 이상의 장정들은 지방군으로 조직되었다. 지방군은 국경 지방인 양계에 주둔하는 주진군과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하는 주현군으로 이루어졌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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