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번 문제
34.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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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치안 유지법의 제정 배경
② 조선 태형령의 적용 사례 분석
③ 제1차 조선 교육령의 제정 목적
④ 경성 제국 대학의 설립 의도와 과정
⑤ 국가 총동원법의 제정과 조선에서의 시행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37년 일제는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
① 치안 유지법의 제정 배경
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조선 태형령의 적용 사례 분석
1912년 일제는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에 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제1차 조선 교육령의 제정 목적
1911년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한국인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중심으로 편성하여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였다.
또한 민족 교육을 강조하던 사립 학교를 탄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경성 제국 대학의 설립 의도와 과정
일제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을 교육하고 한국인의 교육열을 무마하기 위해 1924년에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국가 총동원법의 제정과 조선에서의 시행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 일제의 국가 총동원법 |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제는 1943년에 학도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학생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1938년 지원병제, 1943년 학도 지원병제, 1944년 징병제 시행.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9년 국민 징용령,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 시행.
일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삶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놋그릇, 놋대야, 수저, 농기구, 교회와 사찰의 종 등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제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일제는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산미 증식 계획을 다시 시행하였다.
일제는 농가마다 목표량을 정해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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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현역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임명되어 식민 통치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은 일본 국왕에 직속되어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및 군대 통수권까지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구로 중추원을 두어 한국인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는 한반도에는 일본군 2개 사단과 2만여 명의 헌병 경찰 및 헌병 보조원을 배치하여 강력한 헌병 경찰 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지도자들은 체포, 투옥, 학살당하였다. 또, 일반 관리는 물론 학교 교원들에게까지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하였던 것은 위협적인 헌병 경찰 통치의 한 수단이었다.
일제는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 1912년)에 처하기도 하였다.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한국인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중심으로 편성하여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였다. 또한 민족 교육을 강조하던 사립 학교를 탄압하였다.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4년으로 규정하였다. 1918년 일제는 <서당 규칙>을 통해 서당 설립을 인가제(허가제)로 바꾸었다.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하여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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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거족적인 3⋅1 운동과 그로 인하여 악화된 국제 여론에 직면한 일제는 식민 통치 정책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일제의 문화 통치는 친일파를 길러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시키려는 정책으로서, 우리 민족의 단결을 억제하고 독립 운동을 막으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제는 지금까지 현역 군인으로 조선 총독을 임명, 파견하던 것을 고쳐 문관도 그 자리에 임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일제가 축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문관 총독도 임명되지 않았다.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 그리고 그 유지비는 3⋅1 운동 이전보다 크게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 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시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언론에 대해서 검열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기사는 마음대로 삭제하였고, 더 나아가 신문의 정간을 다반사로 하였으며, 폐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는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을 통해 보통 학교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6년,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5년으로 연장하였다. 또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수는 여전히 부족했고, 조선인의 취학률이 일본인보다 낮았다.
일제는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부 면 합의회를 민선으로 구성하고 도 평의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 기구일 뿐이었고, 일본인이나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문화 통치에 동조한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며 민족 운족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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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립 대학 설립 운동 |
1910년대 한국인 교육은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에 치중되었고,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한국인도 많지 않았다. 3·1운동 이후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자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된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만들어졌다(1922년). 이를 바탕으로 출범한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는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제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방해하고, 잇따른 자연재해로 모금 운동이 어려워지면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실패하였다. 한편 일제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을 교육하고 한국인의 교육열을 무마하기 위해 1924년에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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