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 문제
38. 밑줄 그은 ‘회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 |
①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였다.
② 대일 선전 성명서를 공표하였다.
③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는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④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
⑤ 지청천을 사령관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20년대 초 일제의 탄압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이 발각되어 자금 사정은 어려워졌다.
또한 임시 정부 내에서 독립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외교 활동은 강대국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을 계기로 신채호, 박용만 등의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임시 정부의 개편을 요구하였다.
이어 여러 민족 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923년 국민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①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하였다.
1923년 국민 대표 회의는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창조파와 임시 정부의 조직만 바꾸자는 개조파의 대립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대일 선전 성명서를 공표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는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1941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에는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정 수립, 토지와 대기업 국유화, 의무 교육 제도 시행, 노동권 보장 등이 내용은 담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지청천을 사령관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였다.
1940년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3⋅1 운동 후 독립 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지도부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지역에서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연해주에서는 대한 국민 의회가 조직되었다. 대통령 손병희, 국무총리 이승만 선임. 서울에서는 13도 대표가 모여 한성 정부가 수립되었다. 집정관 총재 이승만, 국무 총리 이동휘 선임.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 의정원 구성, 국무총리 이승만 선임.
정부 통합 운동은 민족 지도자들에 의하여 성사되었다. 국내에서 수립된 한성 정부를 계승하고, 대한 국민 의회를 흡수하여 상하이에 통합 정부인 대한 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1919년 9월). 대한 민국 임시 정부는 각지의 임시 정부를 통합한 후, 민주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헌법을 갖추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안창호를 내무총장으로 추대하였다. 헌정 체제를 입법 기관인 임시 의정원, 사법 기관인 법원, 행정 기관인 국무원으로 구성하여, 우리 나라 최초의 3권 분립에 입각한 민주 공화제 정부로 출범하였다.
임시 정부의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은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 조직망이었다. 연통제는 임시 정부의 지방 행정 기관으로 국내의 각 도, 군, 면에 독판, 군감, 면감을 두어 정부 문서와 명령 전달, 군자금의 송부, 정보 보고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교통국은 통신 기관으로 정보의 수집, 분석, 교환, 연락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임시 정부 활동에는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이 필요하였다. 임시 정부는 이 자금을 독립 공채의 발행이나 국민의 의연금으로 마련하였다. 국내외에서 수합된 자금은 연통제나 교통국의 조직망에 의해 임시 정부에 전달되었으며, 또 만주의 이륭 양행이나 부산의 백산 상회를 통하여 전달되기도 하였다.
임시 정부는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을 주장하였다. 또한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이승만을 중심으로 외교 활동을 전개하여 한국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임시 정부는 정부 조직에 군무부를 설치하여 군사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군무부 아래에는 광복군 사령부와 광복군 총영 등을 두었으며, 이후 육군 주만 참의부(1924년)를 편성하여 무장 투쟁을 펼쳤다.
임시 정부는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간행하여 배포하였으며, 사료 편찬소를 두어 한⋅일 관계 사료집을 간행하였다.
1920년대 초 일제의 탄압으로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이 발각되어 자금 사정은 어려워졌다. 또한 임시 정부 내에서 독립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었다. 더욱이 외교 활동은 강대국의 외면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승만의 국제 연맹 위임 통치 사건을 계기로 신채호, 박용만 등의 무장 투쟁론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임시 정부의 개편을 요구하였다. 이어 여러 민족 운동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민대표 회의를 개최하였다.
국민 대표 회의는 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창조파와 임시 정부의 조직만 바꾸자는 개조파의 대립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국민 대표 회의가 결렬되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임시 정부를 떠났다.
1925년 임시 의정원에서는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제2대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곧이어 헌법을 고쳐 대통령제를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바꾸고 일종의 집단 지도 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이동녕과 김구 등을 중심으로 체제를 재정비해 나갔다.
|
||||||||||||||||||||||||||||||||||||||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윤봉길 의거 이후 큰 활력을 얻었다. 그러나 더 강화된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상하이를 떠나야만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여러 차례 이동을 거듭한 끝에 충칭에 정착하였다.
1940년 김구의 한국 국민당, 조소앙의 한국 독립당, 지청천의 조선 혁명당 3당은 한국 독립당을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임시 정부는 중국 충칭에 정착하여, 총사령관을 지청천, 참모장을 이범석으로 하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임시 정부는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1941년 임시 정부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강령에는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 공화정 수립, 토지와 대기업 국유화, 의무 교육 제도 시행, 노동권 보장 등이 내용은 담았다.
1942년 화북 지방으로 이동하지 않은 조선 민족 전선 연맹(민족 혁명당 후신)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일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정식으로 일제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작전명 독수리 작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일제가 일찍 항복하면서 작전은 무산되었다.
화북 지방으로 이동한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는 일본군의 공세에 맞서 호가장 전투 등이 참가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다. 1942년 중국 화북 지역에서 김두봉이 주도하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였다. 조선 의용군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국내에서도 건국 준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1944년 여운형, 안재홍 등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조선 건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일제의 패망을 확신한 여운형은 독립 선언서를 준비하고, 무장 세력도 조직하면서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조선 건국 동맹은 일제 타도를 위한 대동단결, 민주주의 원칙에 바탕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카이로 회담에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참석하였다. 3국 대표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초로 한국의 독립이 약속된 것이다.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얄타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1945년 미국, 중국, 영국의 3국 정상이 독일 포츠담에서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카이로 선언에서 결정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한다는 포츠담 선언이 발표되었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68회 한능검 심화 1번~50번 전체 해설
- 68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청동기 시대
- 68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고조선
- 68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부여
- 68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백제 문화유산
- 68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김춘추, 신라 삼국 통일
- 68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통일 신라 말의 정치 변동
- 68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금관가야
- 68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고구려 소수림왕
- 68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고려 성종
- 68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발해
- 68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고려 광종
- 68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지방 행정 조직
- 68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 대외 관계
- 68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천문학
- 68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삼별초
- 68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원 간섭기
- 68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직지심체요절
- 68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정도전
- 68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세조
- 68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임진왜란
- 68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남명 조식
- 68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조선 세종
- 68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조선 후기
- 68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조선 영조
- 68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승정원
- 68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기해예송
- 68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종묘
- 68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조선 역관
- 68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개성 지역의 역사
- 68회 한능검 심화 30번 해설 – 강화도 조약
- 68회 한능검 심화 31번 해설 – 동학 농민 운동, 청일전쟁
- 68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두모포 해관 사건
- 68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보빙사
- 68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68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3.1 운동
- 68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신민회
- 68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대한제국 광무개혁
- 68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국민 대표 회의
- 68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산미 증식 계획
- 68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북로 군정서
- 68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형평 운동
- 68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6.25 전쟁
- 68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김대중 정부
- 68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4.19 혁명
- 68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박정희 정부
- 68회 한능검 심화 46번 해설 – 전두환 정부
- 68회 한능검 심화 47번 해설 – 여운형
- 68회 한능검 심화 48번 해설 – 삼국 시대 교육
- 68회 한능검 심화 49번 해설 – 도자기
- 68회 한능검 심화 50번 해설 – 전태일 분신 사건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