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개성 지역의 역사

29번 문제

29. 다음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① 고려 태조 왕건이 도읍으로 삼았다.

② 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축조되었다.

③ 조선 후기 송상이 근거지로 삼아 전국적으로 활동하였다.

④ 일제 강점기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였다.

⑤ 북위 38도선 분단 이후 남한에 속했다가 정전 협정으로 북한 지역이 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918년, 고려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① 고려 태조 왕건이 도읍으로 삼았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축조되었다.

개성에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축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조선 후기 송상이 근거지로 삼아 전국적으로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 사상 중 하나였던 송상이 개성에 근거지로 삼아 전국적으로 활동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일제 강점기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였다.

1931년 평원고무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강주룡은 평양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북위 38도선 분단 이후 남한에 속했다가 정전 협정으로 북한 지역이 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④번이다.

 

개성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

선죽교 –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정몽주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에 의해 살해를 당한 곳이다.

선죽교

공민왕

만월대 – 고려의 궁궐터

경천사지 10층 석탑

개성공단

고려 첨성대

만적의 난

송상 – 조선 후기 사상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 후에 당시 수도인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였다.

국자감(나중에 성균관으로 개편) – 고려의 최고 교육 기관

만부교 사건 –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무산정

조선 후기
사상의 대두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수공업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의 유통도 활성화되었다. 부세 및 소작료의 금납화, 인구의 자연 증가와 인구의 도시 유입도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을 더욱 촉진하였다.

  • 신해통공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이라고 한다. 이로써 상인들은 보다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공인의 등장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 상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하였다. 공인이 시장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하였으므로 상품 수요가 증가하였다.

 

  • 사상의 등장

처음에는 공인이 상업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 송상

개성의 송상은 전국에 지점을 설치하여 활동 기반을 강화하였는데, 주로 인삼을 재배, 판매하고 대외 무역에도 깊이 관여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 경강상인

경강상인은 운송업에 종사하면서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선박의 건조 등 생산 분야에까지 진출하여 활동 분야를 넓히기도 하였다.

    • 내상

조선 시대 동래부(東萊府, 현재의 부산)에서 일본과 무역을 하였다.

    • 만상

의주에서 활동하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부를 많이 축적하였다.

 

  • 도고의 등장

일부 공인과 사상은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로 성장하였다.

노동 운동
  • 배경

1920년대에는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에 따라 산업 노동자 수가 점차 늘어났다. 동시에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힘겨운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임금은 대부분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일본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한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민족 차별 등은 노동자의 계급 의식과 민족 의식을 불러일으켜 노동 운동을 벌이는 배경이 되었다.

 

  • 1920년대 노동 운동

1920년대에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은 지역별 직업별로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 단체에 참여하여 노동 조건과 민족 간 차별 대우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1923년 경성고무공장 여공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1924년에는 조선 노농 총동맹이 만들어졌다.

 

    • 조선 노동 총동맹

1927년 조선 노농 총동맹이 조선 농민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분리되었고, 조선 노동 총동맹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각 지방의 노동 쟁의를 이끌면서 노동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 원산 총파업

1929년 원산 라이징 선 석유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일이 발단이 되어 원산 노동 연합회 주도로 4개월간의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파업은 전국적으로 지지와 성원을 받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자도 격려 전문을 보내와 국제적 연대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 1930년대 노동 운동

일제는 1930년대에 대륙 침략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군수 공업 시설을 확충하고, 지하 자원을 약탈하였으며, 노동력을 동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일제는 한국 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인하하고, 노동 시간을 연장하였으며, 각종 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하였다.

1930년대 노동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노동 운동은 반제국주의 항일 운동의 성격을 보였다.

1931년 평원고무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강주룡은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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