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견훤

11번 문제

11.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② 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③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④ 김흠돌 등 진골 세력을 숙청하였다.

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에 해당하는 인물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다.

 

①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켰다(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백제 무왕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견훤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김흠돌 등 진골 세력을 숙청하였다.

통일 신라 신문왕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904년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함.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3월,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 935년 6월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5년 11월,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당함.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백제
무왕
  • 금마저에 미륵사를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난(618년)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687년 관료전 지급
  • 689년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
  • 감은사 건립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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