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 문제
23.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 (가) 처음에 심의겸이 외척으로 권세를 부리니 당시 명망 있는 사람들이 섬겨 따랐다. 그런데 김효원이 전랑(銓郞)이 되어 그들을 배척하자 심의겸의 무리가 그를 미워하니, 점차 사람이 나뉘어 동인과 서인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나) 기해년에 왕이 승하하자 재신 송시열이 사종(四種)의 설을 인용하여 “대행 대왕은 왕대비에게 서자가 된다. 왕통을 이었으나 장자가 아닌 경우이니 기년복(朞年服)*을 입어야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허목 등 신하들은 전거를 들어 다투기를, “대행 대왕은 왕대비에게 서자가 아니라 장자가 된 둘째이니,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기년복: 1년 동안 입는 상복 |
① 인조반정으로 북인 세력이 몰락하였다.
② 목호룡의 고변으로 옥사가 발생하였다.
③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이언적 등이 화를 입었다.
④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차지하였다.
⑤ 이인좌를 중심으로 소론 세력 등이 난을 일으켰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 조선 전기 사림은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과 이조 전랑의 임명 문제를 놓고 갈등이 심해져 분화되었다.
결국 조선 선조 때 사림은 이황, 조식을 중심으로 하는 동인, 이이, 성혼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으로 분화되었다.
(나) 1659년 조선 현종 때 효종이 죽자 자의 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서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므로 1년을,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첫째 아들로 대우하여 3년을 입을 것을 주장하였다.
이를 기해예송이라고 한다.
① 인조반정으로 북인 세력이 몰락하였다.
조선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의 영창 대군 살해와 인목 대비 유폐 등으로 결국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과 북인은 몰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목호룡의 고변으로 옥사가 발생하였다.
조선 현종 이후인 경종 시기 노론 세력이 왕을 시해한다는 목호룡의 고변으로 연잉군(나중에 조선 영조)과 노론이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이언적 등이 화를 입었다.
1547년 조선 선조 이전인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차지하였다.
1689년 조선 숙종은 장희빈의 아들을 적장자로 인정하여 원자로 삼으려 하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서인을 대거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면서 남인이 정권을 잡은 기사환국이 일어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이인좌를 중심으로 소론 세력 등이 난을 일으켰다.
1728년 조선 영조 시기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 조선 전기 붕당의 출현 |
선조가 즉위하면서 그 동안 향촌에서 세력 기반을 다져 오던 사림 세력이 대거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사림 세력은 척신 정치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게 되었다. 명종 때 이후 정권에 참여해 온 기성 사림은 척신 정치의 과감한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명종 때의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새롭게 정계에 등장한 신진 사림은 원칙에 더욱 철저하여 사림 정치의 실현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또한 인사권을 가진 이조 전랑의 임명 문제와 공론을 둘러싸고 사림 세력은 갈등을 겪었다. 조선 선조 시기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였다.
동인은 이황, 조식, 그리고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신진 사림 세력이 참여하여 먼저 붕당의 형세를 이루었다. 반면에, 서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인이 가담함으로써 비로소 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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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붕당 정치 전개 |
붕당 정치 초기에는 동인이 우세한 가운데 정국이 운영되었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온건파인 남인과 급진파인 북인으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북인이 집권하여 광해군 때까지 정국을 주도하였다.
광해군의 지지 세력인 북인은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려 하였다. 또한 북인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취하는 등 성리학적 의리 명분론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이는 서인과 남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광해군의 영창 대군 살해와 인목 대비 유폐 등으로 결국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과 북인은 몰락하였다. 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을 운영해 나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학문적 입장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상호 비판적인 공존 체제를 이루어 나갔다.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각 학파에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물이 산림이란 이름으로 재야에서 그 여론을 주재하였다.
현종 때까지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가 유지된 채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659년 기해예송. 기년복 1년. 효종이 죽은 뒤 자의 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서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므로 1년을,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첫째 아들로 대우하여 3년을 입을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1년설이 채택되었다.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674년 갑인예송. 기년복 1년. 효종비가 죽은 뒤 또 자의 대비의 복제가 문제 되었는데, 서인은 9개월설을, 남인은 1년설을 주장하여 1년설이 채택되었다.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약화되고 남인 중심의 정국이 운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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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붕당 정치 전개 |
붕당 정치 초기에는 동인이 우세한 가운데 정국이 운영되었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온건파인 남인과 급진파인 북인으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북인이 집권하여 광해군 때까지 정국을 주도하였다.
광해군의 지지 세력인 북인은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려 하였다. 또한 북인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취하는 등 성리학적 의리 명분론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이는 서인과 남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광해군의 영창 대군 살해와 인목 대비 유폐 등으로 결국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과 북인은 몰락하였다. 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을 운영해 나갔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학문적 입장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상호 비판적인 공존 체제를 이루어 나갔다.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각 학파에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물이 산림이란 이름으로 재야에서 그 여론을 주재하였다.
현종 때까지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가 유지된 채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659년 기해예송. 기년복 1년. 효종이 죽은 뒤 자의 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서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므로 1년을,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첫째 아들로 대우하여 3년을 입을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1년설이 채택되었다. 당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674년 갑인예송. 기년복 1년. 효종비가 죽은 뒤 또 자의 대비의 복제가 문제 되었는데, 서인은 9개월설을, 남인은 1년설을 주장하여 1년설이 채택되었다. 남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약화되고 남인 중심의 정국이 운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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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명종 |
조선 인종이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였다. 이후 인종의 외척인 대윤(윤임)과 명종의 외척인 소윤(윤원형)의 권력 다툼이 발생했고, 결국 윤임이 제거당하는 을사사화가 발생했다(1545년).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15세기에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1556년 명종 때 직전법이 폐지되어 수조권 지급 제도가 없어졌다.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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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붕당 정치와 탕평론의 대두 조선 숙종 |
숙종은 인사 관리를 통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파에게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 관리로 일관하여 환국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숙종 초 정권을 장악한 남인을 견제하고자 했던 숙종은 남인의 역모 사건 등을 계기로 남인을 처벌하고 서인으로 급격히 정권을 교체시켰다. 허적과 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되었다. 이를 경신환국이라 한다. 서인이 주도권을 가졌다. 경신환국 이후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다.
숙종은 장희빈의 아들을 적장자로 인정하여 원자로 삼으려 하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서인을 대거 몰아내고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면서 남인이 정권을 잡은 기사환국이 일어났다. 남인이 주도권을 가졌다. 제주도로 유배를 간 송시열이 사형을 당했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다시 맞아들이고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을 교체시켰다. 이를 갑술환국이라 한다. 서인(노론과 소론)이 주도권을 가졌다.
1682년 숙종 때 국왕의 호위와 수도 방어를 위해 금위영을 창설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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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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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문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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