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번 문제
39.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 |
①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간행하였다.
② 태극 서관을 설립하여 서적을 보급하였다.
③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④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사정안을 제정하였다.
⑤ 국문 연구소를 두어 한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조선어 학회에 대한 내용이다.
1931년 조선어 연구회는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 학회로 개편되었다.
①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간행하였다.
제국신문은 1898년 발간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태극 서관을 설립하여 서적을 보급하였다.
신민회는 평양과 서울에 태극 서관을 설립하여 계몽 서적을 출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사정안을 제정하였다.
조선어 학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의 제정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국문 연구소를 두어 한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1907년 국문 연구소가 만들어져 주시경, 지석영 등의 주도로 국문의 정리, 문법과 국어의 이해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 일제 강점기 국어 연구 |
3⋅1 운동 이후 국문 연구소의 전통을 이어 이윤재, 최현배 등은 조선어 연구회를 창립하였다. 조선어 연구회는 ‘한글’이란 잡지를 간행하여 그 연구 성과를 정리, 발표하였다. 또한 이들은 한글 기념일인 ‘가갸날’(1926년)을 정하고 우리말쓰기를 권장함으로써 한글을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어 연구회는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 학회로 개편되었다. 조선어 학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의 제정이었다. 더 나아가 조선어 학회는 우리말 큰 사전을 편찬하려 하였지만,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고 말았다. 일제는 조선어 학회를 독립 운동 단체로 간주하여 관련된 인사들을 체포하고, 학회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를 조선어 학회 사건(1942)이라 한다. |
||||||
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순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황성신문이 여권통문을 처음 보도하였다.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만세보는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
|||||||
| 애국 계몽 운동 |
보안회는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한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 운동을 벌여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독립 협회에 영향을 받은 헌정 연구회는 국민의 정치 의식 고취와 입헌 정체의 수립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한 자강회는 전국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고, 1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기에 이르렀으나,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의 퇴위를 강요하자, 격렬한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체되었다.
대한 협회는 대한 자강회를 계승하여 교육의 보급, 산업의 개발, 민권의 신장, 행정의 개선 등을 강령으로 내걸고,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한국 지배권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대한 협회의 국권 회복에 대한 의지가 크게 약화되었다.
신민회는 1907년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를 망라하여 조직된 비밀 결사였다. 안창호, 양기탁 등을 지도부로 하였다. 신민회는 국권의 회복과 공화 정체의 국민 국가 건설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표면적으로는 문화적,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독립군 기지의 건설에 의한 군사적 실력 양성을 기도하였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1908년), 정주에 오산 학교(1907년)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신민회는 평양과 서울에 설립된 태극 서관에서 계몽 서적을 출판하였다. 또한 평양에 자기 회사를 세워 민족 산업의 육성에도 힘썼다.
만주에 독립군 기지(삼원보)를 건설하고,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
||||||
| 1910년대 국외 민족 운동 |
국권 피탈 이후 서간도로 이주한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이상룡 등은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에 신한민촌을 건설하였고, 이곳에서 자치 기관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지치 기관인 경학사는 부민단, 한족회로 발전하면서 서로 군정서를 조직하였다. 신흥 강습소는 군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이후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였다.
북간도로 이주한 동포들은 용정촌, 명동촌 등 한인 집단촌을 형성하고 간민회 등의 자치 단체를 만들어 동포 사회를 이끌었다. 이상설, 김약연 등은 각각 서전서숙과 명동 학교 등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대종교는 북간도로 거점을 옮겼고, 서일 등 신자 중 일부가 무장 독립 단체인 중광단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3·1 운동 이후 북로 군정서로 개편하였다.
이상설, 이승희 등은 북만주 밀산부에 독립운동 기지인 한흥동을 건설하였다.
연해주로 이주한 동포들에 의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 집단 거주지인 신한촌이 만들어졌고, 자치 단체인 권업회가 조직되어 한인들의 권익 신장에 힘썼다. 권업회는 권업신문을 발행하였다. 권업회의 초대 회장은 최재형이었다. 1914년 이상설과 이동휘를 정·부통령으로 하는 대한 광복군 정부가 조직되었다. 이외 한인 단체인 전로 한족회 중앙 총회가 결성되었고, 이동휘 등이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 사회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동제사(1912년), 박달 학원(1913년) 등이 조직되었다. 1912년 7월 신규식과 박은식 등은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조직하였다. 조소앙은 1913년에 참여하였다. 동제사는 장차 전개될 독립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교육을 중시했고, 중국의 각종 군사교육기관을 통해 100여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15년 베이징에서는 신규식, 박은식 등이 신한 혁명당을 조직하였다. 1917년에는 신규식, 조소앙 등이 국민 주권론과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임시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등이 신한 청년당을 결성했다.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한국 독립에 관한 청원서>를 작성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다. 그리고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한국인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미주 지역에 한인 동포 사회가 형성되었다. 1905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한국인들이 이주하여 에네켄 농장에서 가혹한 노동 생활을 하였다. 1910년에는 숭무학교가 설립되어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08년에 장인환과 전명운이 미국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사건을 계기로 1910년 안창호 등이 대한인 국민회가 결성하였다. 대한인 국민회는 신한민보를 발행하였다. 1913년에는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914년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 군단을 조직하여 군사 훈련을 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무총장 노백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독립군 비행사 양성을 위해 한인 비행 학교를 설립하였다. |
||||||
| 근대 국학 연구 |
1907년 국문 연구소가 만들어져 주시경, 지석영 등의 주도로 국문의 정리, 문법과 국어의 이해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1909년 12월 27일까지 활동하였다.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하여 민족주의 사학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집필하였다.
신채호, 박은식 등 계몽 사학자들은 을지문덕전, 강감찬전, 이순신전 등 전기를 저술하였다.
세계사에 관한 책들도 편찬되었다. 미국 독립사, 월남 망국사, 이태리 건국 삼걸전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외국의 간섭에서 독립을 하거나 나라를 발전시킨 경우, 또는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은 경우를 소개하여 스스로 교훈을 얻으려 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63회 한능검 심화 해설 1번~50번
- 63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구석기 시대
- 63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동예
- 63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백제, 고구려
- 63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백제 멸망
- 63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통일 신라
- 63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최치원
- 63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신라 진흥왕
- 63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발해 문왕
- 63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고려 최충헌
- 63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불국사 3층 석탑
- 63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견훤
- 63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광종
- 63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 관학 진흥 정책
- 63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고려 거란의 침입
- 63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문화유산
- 63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지눌
- 63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고려 요동 정벌, 위화도 회군, 과전법
- 63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고려 시대 경제
- 63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영조
- 63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무오사화
- 63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조선 세조
- 63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율곡 이이
- 63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사림의 분화, 기해예송
- 63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청나라, 병자호란
- 63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조선 후기 경제
- 63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비변사
- 63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김정희
- 63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신해박해, 병인박해
- 63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박규수
- 63회 한능검 심화 30번 해설 – 갑신정변
- 63회 한능검 심화 31번 해설 – 3.1 운동
- 63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제1차 갑오개혁
- 63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독립협회
- 63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스티븐스 저격
- 63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임병찬
- 63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조선 혁명군
- 63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일제 강점기 형평 운동
- 63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일제 무단 통치
- 63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조선어 학회
- 63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김구, 여운형
- 63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제헌 국회
- 63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6.25 전쟁
- 63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이승만 정부
- 63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3선 개헌, 유신 헌법
- 63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박정희 정부
- 63회 한능검 심화 46번 해설 –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
- 63회 한능검 심화 47번 48번 해설 – 몽골, 고구려 멸망, 정묘호란, 임진왜란
- 63회 한능검 심화 49번 해설 – 6월 민주 항쟁
- 63회 한능검 심화 50번 해설 – 7·7 선언
한국사 시험 모음
- 한능검 개념 요약 정리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