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 문제
18.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의 경제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 도병마사가 아뢰기를, “안서도호부에서 바친 철은 예전에는 무기용으로 충당하였습니다. 근래에 흥왕사를 창건하면서 또다시 철을 더 바치라고 명령하였으니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염주, 해주, 안주 세 곳에서 2년 동안 바치는 철을 흥왕사 창건에 쓰게 하여 수고로운 폐단을 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 |
①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
② 시장을 감독하기 위해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③ 허적의 제안에 따라 상평통보를 발행하였다.
④ 일본과의 교역 규모를 규정한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
⑤ 상권 수호를 목적으로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도병마사는 고려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관청으로, 재신과 추밀이 함께 모여 회의로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였다.
①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
고려 시대 토지 제도인 전시과는 문무 관리로부터 군인, 한인에 이르기까지 18등급으로 나누어 곡물을 수취할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시지를 제공하는 제도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시장을 감독하기 위해 동시전을 설치하였다.
신라 지증왕 때 시장 중 하나인 동시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전을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허적의 제안에 따라 상평통보를 발행하였다.
조선 숙종 때 상평통보가 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일본과의 교역 규모를 규정한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
조선 세종 때 계해약조가 체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상권 수호를 목적으로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였다.
1898년 서울 상인들은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여, 외국인의 불법적인 내륙 상업 활동을 엄단할 것을 요구하며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 고려 중앙 정치 조직 |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에 마련한 2성 6부제를 토대로 하였다. 고려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하였다.
중서문하성
상서성
중추원
삼사
어사대
대간
도병마사
식목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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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시과 제도와 토지 소유 |
태조 때에 역분전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은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준 토지였다.
시정 전시과 제도는 경종 때에 공복 제도와 역분전 제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관직의 높고 낮음과 함께 인품을 반영하여 토지를 지급하였다.
목종 때 기존 전시과를 개정하여 관직만을 고려하여 지급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지급량도 재조정하였다.
관료에게 줄 토지가 부족하게 되자 문종 때에 현직 관료에게만 주도록 다시 조정하였다.
문무 관리로부터 군인, 한인에 이르기까지 18등급으로 나누어 곡물을 수취할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시지를 주었다.
지급된 토지는 소유권이 아닌 수조권만 가지는 토지였다.
관직 복무와 직역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었으므로 토지를 받은 자가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날 때에는 토지를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였다.
문벌 귀족의 세습적인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것은 공음전이었다. 공음전은 5품 이상의 관료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데,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다. 이는 음서제와 함께 귀족의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었다.
한인전은 6품 이하 하급 관료의 자제로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지급한 토지인데, 이것은 관인 신분의 세습을 위한 것이다.
군인전은 군역의 대가로 주는 토지로, 군역이 세습됨에 따라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하급 관료와 군인의 유가족에게는 구분전을 지급하여 생활 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점차 귀족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세습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전시과 제도가 원칙대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민전은 매매, 상속, 기증, 임대 등이 가능한 사유지로서, 귀족이나 일반 농민의 상속, 매매, 개간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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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지증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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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화폐 유통 |
조선 후기 상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교환의 매개로서 금속 화폐, 즉 동전이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세금과 소작료도 동전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누구나 동전인 상평통보만 가지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동전은 교환 수단일 뿐 아니라 재산 축적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동전의 발행량이 상당히 늘어났는데도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시중에서 동전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지주나 대상인들이 화폐를 고리대나 재산 축적에 이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환, 어음 등의 신용 화폐가 점차 보급되어 갔다. 이는 이 시기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과 상업 자본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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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세종 |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을 허용해 주었다. 대마도체찰사로 쓰시마섬(대마도)에 파견된 이예는 쓰시마 도주 종정성과 계해약조를 체결하였다.
1443년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1446년 반포하였다. 1448년 조선의 표준 한자음을 제정하기 위해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동국정운이 편찬되었다.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장영실, 이천 등이 제작하였다.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토지 비옥도와 풍흉의 정도에 따라 전분6등법, 연분9등법으로 바꾸고, 조세 액수를 1결당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를 내도록 하는 공법을 실시하였다.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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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권 수호 운동 |
개항 이후, 서울을 비롯한 조선 각지에서 청과 일본 상인의 상권 침탈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에 반발하여 1890년, 수천 명의 서울 상인들은 철시(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음)하고 외국 상점들의 서울 퇴거를 요구하였다. 그 뒤에도 철시한 서울 상인들과 시민 수천 명이 1주일 동안 격렬하게 상권 수호 운동을 벌였다.
1898년 서울 상인들은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하여, 외국인의 불법적인 내륙 상업 활동을 엄단할 것을 요구하며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63회 한능검 심화 해설 1번~50번
- 63회 한능검 심화 1번 해설 – 구석기 시대
- 63회 한능검 심화 2번 해설 – 동예
- 63회 한능검 심화 3번 해설 – 백제, 고구려
- 63회 한능검 심화 4번 해설 – 백제 멸망
- 63회 한능검 심화 5번 해설 – 통일 신라
- 63회 한능검 심화 6번 해설 – 최치원
- 63회 한능검 심화 7번 해설 – 신라 진흥왕
- 63회 한능검 심화 8번 해설 – 발해 문왕
- 63회 한능검 심화 9번 해설 – 고려 최충헌
- 63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불국사 3층 석탑
- 63회 한능검 심화 11번 해설 – 견훤
- 63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고려 광종
- 63회 한능검 심화 13번 해설 – 고려 관학 진흥 정책
- 63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고려 거란의 침입
- 63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문화유산
- 63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지눌
- 63회 한능검 심화 17번 해설 – 고려 요동 정벌, 위화도 회군, 과전법
- 63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고려 시대 경제
- 63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조선 영조
- 63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무오사화
- 63회 한능검 심화 21번 해설 – 조선 세조
- 63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율곡 이이
- 63회 한능검 심화 23번 해설 – 사림의 분화, 기해예송
- 63회 한능검 심화 24번 해설 – 청나라, 병자호란
- 63회 한능검 심화 25번 해설 – 조선 후기 경제
- 63회 한능검 심화 26번 해설 – 비변사
- 63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김정희
- 63회 한능검 심화 28번 해설 – 신해박해, 병인박해
- 63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박규수
- 63회 한능검 심화 30번 해설 – 갑신정변
- 63회 한능검 심화 31번 해설 – 3.1 운동
- 63회 한능검 심화 32번 해설 – 제1차 갑오개혁
- 63회 한능검 심화 33번 해설 – 독립협회
- 63회 한능검 심화 34번 해설 – 스티븐스 저격
- 63회 한능검 심화 35번 해설 – 임병찬
- 63회 한능검 심화 36번 해설 – 조선 혁명군
- 63회 한능검 심화 37번 해설 – 일제 강점기 형평 운동
- 63회 한능검 심화 38번 해설 – 일제 무단 통치
- 63회 한능검 심화 39번 해설 – 조선어 학회
- 63회 한능검 심화 40번 해설 – 김구, 여운형
- 63회 한능검 심화 41번 해설 – 제헌 국회
- 63회 한능검 심화 42번 해설 – 6.25 전쟁
- 63회 한능검 심화 43번 해설 – 이승만 정부
- 63회 한능검 심화 44번 해설 – 3선 개헌, 유신 헌법
- 63회 한능검 심화 45번 해설 – 박정희 정부
- 63회 한능검 심화 46번 해설 –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
- 63회 한능검 심화 47번 48번 해설 – 몽골, 고구려 멸망, 정묘호란, 임진왜란
- 63회 한능검 심화 49번 해설 – 6월 민주 항쟁
- 63회 한능검 심화 50번 해설 – 7·7 선언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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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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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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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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