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번 문제
29.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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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조선 중립화론을 건의하였다.
②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③ 대동강에 침입한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하였다.
④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정리한 지구전요를 저술하였다.
⑤ 강화도 조약 체결의 전말을 기록한 심행일기를 남겼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에 해당하는 인물은 박규수이다.
박규수는 연행사로 청에 파견이 되었으며, 임술 농민 봉기로 안핵사로 파견되었다가 삼정의 문란을 해결을 위해 삼정이정청 설치를 건의하였다.
① 조선 중립화론을 건의하였다.
갑신정변 이후 열강의 조선 침략이 격화되자,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인 부들러나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 등은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자는 논의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양기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대동강에 침입한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하였다.
평안 감사였던 박규수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나자,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정리한 지구전요를 저술하였다.
최한기가 저술한 지구전요는 국외의 각종 지리서를 참조하여 편찬한 세계지리서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강화도 조약 체결의 전말을 기록한 심행일기를 남겼다.
신헌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박규수 | 연암 박지원의 손자
연행사로 청에 파견됨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삼정의 문란을 해결을 위해 삼정이정청 설치를 건의함 평안 감사로 평양 관민을 지휘하여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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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술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1862년 철종 때 진주에서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켰다. 이를 임술 농민 봉기라고 한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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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1871년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는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다.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협상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퇴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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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 개화론의 대두 |
1873년 최익현의 상소로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 체제가 시작됐다.
청에서 양무운동이 전개되고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무렵 조선에서도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과 통상해야 한다는 통상 개화론이 대두하였다. 통상 개화론은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중심이 되었고, 이들은 북학파 실학자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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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신정변 |
임오군란 후 청의 내정 간섭과 민씨 정권의 친청 정책으로 급진 개화파의 개화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에 김옥균은 개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서 차관을 얻으려 하였으나, 차관 교섭이 실패로 끝나면서 급진 개화파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마침 청은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조선에 주둔한 청군의 절반을 철수하였다. 급진 개화파는 이 틈을 타 민씨 정권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1884년).
청과의 의례적 사대 관계를 폐지하고, 입헌 군주제적 정치 구조를 지향하면서,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과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또, 지조법을 실시하고, 호조로 재정을 일원화하였으며, 혜상공국을 폐지하여 자유로운 상업의 발전을 꾀하였다.
개화당 정부의 개혁은 청이 정변을 진압하고 일본군이 약속을 어기고 철수하면서 3일 천하로 끝이 났다. 정변을 주도하였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조선은 일본의 강요로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비 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
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군이 철수할 것, 그리고 장차 조선에 파병할 경우 상대국에 미리 알릴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청국과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었다.
갑신정변 실패 이후, 조선에 대한 청국의 내정 간섭이 더욱 강화되었다.
갑신정변은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때 조러 비밀 협약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1885년).
이렇듯 열강의 조선 침략이 격화되자,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인 부들러나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 등은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자는 논의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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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순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황성신문이 여권통문을 처음 보도하였다.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만세보는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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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천문학과 지도 |
천문학은 서양 과학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전하였다.
김석문은 지전설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주장하여 우주관을 크게 전환시켰다.
홍대용은 과학 연구에 힘썼으며, 김석문과 함께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지전설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 우주론을 내놓았는데, 당시로서는 대담한 주장이었다. 이리하여 조선 후기의 천문학은 전통적 우주관에서 벗어나 근대적 우주관으로 접근해 갔다. <의산문답>을 저술하여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주해수용을 저술하여 조선ㆍ중국ㆍ서양 수학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였다.
역법은 김육 등의 노력으로 시헌력이 도입되었다. 이는 서양 선교사인 아담 샬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것으로 청에서 사용되고 있었는데, 종전의 역법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한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약 60여 년 간의 노력 끝에 시헌력을 채용하였다.
조선 후기에 서양 선교사가 만든 곤여만국전도 같은 세계 지도가 중국을 통하여 전해짐으로써 지리학에서도 보다 과학적이고 정밀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지도 제작에서도 더 정확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를 통하여 당시 조선인의 세계관이 확대될 수 있었다.
최한기가 저술한 지구전요는 국외의 각종 지리서를 참조하여 편찬한 세계지리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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