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회 한능검 심화 27번 해설 – 김정희

27번 문제

27.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②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③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다.

④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⑤ 안평 대군의 꿈을 소재로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의 (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추사 김정희이다.

 

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발해고>를 저술한 유득공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수원 화성을 건설한 정약용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다.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하였다.

정제두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안평 대군의 꿈을 소재로 몽유도원도를 그렸다.

조선 전기 화가 안견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이다.

 

조선 후기
진경 산수화와
풍속화, 서예
  • 진경 산수화

진경 산수화는 중국 남종과 북종 화법을 고루 수용하여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 풍속에 맞춘 새로운 화법으로 창안한 것이었다.

 

    • 정선

진경 산수화를 개척한 화가는 18세기에 활약한 정선이었다. 그는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하여 그것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정선은 대표작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에서 바위산은 선으로 묘사하고, 흙산은 묵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다.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 풍속화

풍속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정경과 일상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어 회화의 폭을 확대하였다.

    • 단원 김홍도

풍속화에 새 경지를 열어 놓은 화가는 김홍도였다. 그는 정감어린 풍속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필치로 묘사하였다. 이런 그림에서 18세기 후반의 생활상과 활기찬 사회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주막

무동

서당도

씨름

산수인물도

 

    • 혜원 신윤복

김홍도에 버금 가는 풍속화가로는 신윤복이 있었다. 그는 주로 양반과 부녀자의 생활과 유흥, 남녀 사이의 애정 등을 감각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였다.

연소답청

쌍검대무

월하정인

 

    • 김득신

파적도

 

    • 전기

매화초옥도

 

    • 강세황

이 밖에도 강세황 등의 화가가 개성 있는 그림으로 18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강세황은 서양화 기법을 반영하여 사물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영통동구도

 

    • 오원 장승업

19세기에 이르러 장승업은 강렬한 필법과 채색법으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 김정희

김정희는 문인화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도

 

  • 서예

이광사 – 서예에서도 우리의 정서와 개성을 추구하는 단아한 글씨의 동국진체가 이광사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김정희 – 김정희는 우리 서예 발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고금의 필법을 두루 연구하여 굳센 기운과 다양한 조형성을 가진 추사체를 창안하여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조선 후기
국학 연구
실학의 발달과 함께 민족의 전통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우리의 역사, 지리, 국어 등을 연구하는 국학이 발달하였다.

 

  • 역사
    • 이익

이익은 실증적이며 비판적인 역사 서술을 제시하고,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민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다.

 

    • 안정복

이익의 제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저술하여 이익의 역사 의식을 계승하였다.

동사강목

고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우리 역사의 독자적 정통론을 세워 이를 체계화하였다.

 

    • 이긍익

이긍익은 조선 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정리하여 연려실기술을 저술하였다.

 

    • 한치윤

한치윤은 500여 종의 중국 및 일본의 자료를 참고하여 해동역사를 편찬하여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 이종휘

이종휘는 동사에서 고구려 역사 연구를 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

 

    • 유득공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발해사 연구를 심화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신라의 통일은 불완전한 것이고, 북쪽에 발해가 있었으므로 이를 남북국이라 불러야 한다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만주 지방까지 확대시킴으로써 한반도 중심의 협소한 사관을 극복하는 데 힘썼다.

옛날에 고씨가 북쪽 지방에 자리잡아 고구려라 했고, 부여씨가 서쪽 지방에 머무르면서 백제라 했으며, 박씨, 석씨, 김씨가 동남 지방에 살면서 신라라 하였다. 이것이 바로 삼국이다.

마땅히 삼국에 대한 사서가 있어야 할 텐데, 고려가 이것을 편찬했으니 옳은 일이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한 후에 김씨가 남쪽을 차지하고, 대씨가 북쪽을 차지하고는 발해라 했으니, 이것을 남북국이라 한다. 거기에는 마땅하게 남북국의 사서가 있었을 텐데, 고려가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발해고>

 

  • 지리서

국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여 우수한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 한백겸

역사 지리서로 한백겸의 동국지리지가 나왔다.

 

    • 정약용

역사 지리서로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등이 나왔다.

 

    • 이중환

인문 지리서로 이중환의 택리지가 편찬되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생활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점에서 주목된다.

택리지

각 지역의 자연 환경과 물산, 풍속, 인심 등을 서술하고, 어느 지역이 살기 좋은 곳인가를 논한 책

 

  • 지도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해짐에 따라 정밀하고 과학적인 지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 정상기

영조 시기 제작된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최초로 100리척을 사용하여 정확하고 과학적인 지도 제작에 공헌하였다.

 

    • 김정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의 표시가 정밀하고,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이 표시되었으며,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 국어
    • 신경준

신경준의 음운 연구서인 훈민정음운해가 나왔다.

 

    • 유희

유희의 음운 연구서인 언문지가 나왔다.

 

    • 이의봉

우리의 방언과 해외 언어를 정리한 이의봉의 고금석림이 편찬되었다.

 

  • 백과 사전

조선 후기에는 실학이 발달하고 문화 인식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백과 사전류의 저서가 많이 편찬되었다.

 

    • 이수봉

이 방면의 효시가 된 책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다.

 

  • 이익 <성호사설>

성호사설에서 이익은 나라가 가난하게 된 원인은 노비 제도, 과거 제도, 양반 제도 등이 잘못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고리대 활동과 농민의 게으름도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 이덕무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 서유구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 이규경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 동국문헌비고

영⋅정조 때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동국문헌비고가 편찬되었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의 역대 문물을 정리한 한국학 백과 사전이다.

 

  • 기타

김정희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다.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편찬하였다.

조선 후기
의학, 농학,
기술 개발
  • 의학

허준의 <동의보감> – 17세기 초에 허준은 동의보감을 저술하여 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은 우리의 전통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뛰어난 의학서로 인정되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 – 허임은 침구경험방을 저술하여 침구술을 집대성하였다.

정약용의 <마과회통> – 정약용은 마진(홍역)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키고 이 분야의 의서를 종합하여 마과회통을 편찬하였으며, 박제가와 함께 종두법을 연구하여 실험하기도 하였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 19세기에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여 사상 의학을 확립하였다. 이는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구분하여 치료하는 체질 의학 이론으로, 오늘날까지도 한의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 농업

신속의 <농가집성> – 17세기 중엽에 신속은 농가집성을 펴내 벼농사 중심의 농법을 소개하고, 이앙법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 19세기에 서유구는 농업과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종합하여 임원경제지라는 농촌 생활 백과 사전을 편찬하였다.

 

  • 기타

박세당은 색경을, 홍만선은 산림경제를, 서호수는 해동농서를 저술하여 농업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기술

정약용은 서양 선교사가 중국에서 펴낸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만들었는데, 이 거중기는 수원 화성을 쌓을 때에 사용되어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공사비를 줄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정약용은 정조가 수원에 행차할 때 한강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배다리도 설계하였다.

조선 후기
양명학의 수용
실천성 강조 – 성리학의 절대화와 형식화를 비판하며 실천성을 강조한 양명학은 중종 때에 조선에 전래되었다.

이단 – 학자들 사이에 관심을 끌어가던 양명학은 이황이 정통 주자학 사상과 어긋난다며 비판하면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양명학 – 양명학은 인간의 마음이 곧 이(理)라는 심즉리(心卽理) 바탕으로, 인간이 상하 존비의 차별 없이 본래 타고난 천리(天理)로서의 양지를 실현하여 사물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치양지설(致良知說), 그리고 앎과 행함이 분리되거나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앎은 행함을 통해서 성립한다는 지행합일설( 知行合一說)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강화 학파 – 18세기 초에 정제두는 강화도로 옮겨 살면서 몇몇 소론 학자가 명맥을 이어가던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학파로 발전시켰다.

조선 전기
그림과 글씨
  • 그림
    • 안견

화원 출신인 안견은 역대 화가들의 기법을 체득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는 자연스러운 현실 세계와 환상적인 이상 세계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대각선적인 운동감을 활용하여 구현한 걸작이다.

몽유도원도

 

    • 강희안

문인 화가인 강희안은 시적 정서가 흐르는 낭만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의 대표작인 고사관수도는 간결하고 과감한 필치로 인물의 내면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표현하였다.

고사관수도

 

    • 이상좌

노비 출신으로 화원에 발탁된 이상좌는 색다른 분위기의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대표작인 송하보월도는 바위틈에 뿌리박고 모진 비바람을 이겨 내고 있는 늙은 소나무를 통하여 강인한 정신과 굳센 기개를 표현하였다.

 

  • 글씨

서예는 양반이라면 누구나 터득해야 할 필수 교양이었기 때문에 뛰어난 서예가들이 많이 나타났다. 안평 대군과 양사언, 한호가 명필로 널리 알려졌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3년 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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