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1번 기출 해설

문제

11.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사료로 만나는 한국사

교서를 내려 말하기를, “태학조교 송승연과 나주목(羅州牧)의 경학박사 전보인이 [학생들을] 이끌어 잘 도와서, 학문을 널리 닦으라는 공자의 뜻에 합치된다.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아서 내가 학문을 권장하는 뜻에 들어맞으니 마땅히 그들을 발탁하여 특별하고 두터운 총애를 보이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해설] 위 사료는 (가)이/가 유학 교육에 공이 있는 태학조교와 나주목의 경학박사를 치하하는 『고려사』의 기록이다. 중앙뿐 아니라 지방의 교육도 장려했던 (가)은/는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에 이어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파견하였다.

①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② 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 사업을 추진하였다.

③ 청연각과 보문각을 두어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④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⑤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성종은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했다.

또한 국자감을 정비하고, 지방에 경학 박사와 의학 박사를 파견하여 유학 교육의 진흥에 노력하였다.

 

① 광덕, 준풍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고려 광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신돈을 중심으로 전민변정 사업을 추진하였다.

고려 공민왕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청연각과 보문각을 두어 학문 연구를 장려하였다.

고려 예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려 태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고려 성종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고려 성종
  • 시무 28조

최승로는 시무 28조를 올려 유교 정치사상을 통치의 근본 이념으로 삼고 여러 제도의 정비를 요구

  • 2성 6부제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의 실정에 맞게 이를 조정한 2성 6부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관제도 새로 마련

  • 12목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목사·지방관을 파견

  • 향리 제도

지방관을 파견하고 향리 제도를 마련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

  • 유학 교육 진흥

국자감을 정비하고, 지방에 경학 박사와 의학 박사를 파견하여 유학 교육의 진흥에 노력

  • 의창

태조 때 설치됐던 흑창이 의창으로 개칭, 확대

  • 상평창

물가를 조절하여 빈민을 구제하던 기관인 상평창 설치

  • 건원중보

철전인 건원중보가 만들어짐

  • 강동 6주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

고려 광종
  • 노비안검법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수입 기반을 확대

  • 과거 제도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를 시행하여,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

  • 공복 제정

지배층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백관의 공복 제정

  • 칭제 건원

국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황제를 칭하고(외왕내제), 광덕, 준풍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 철령 이북의 땅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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