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0번 기출 해설

문제

30. 밑줄 그은 ‘전쟁’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① 고종이 아관 파천을 단행하였다.

②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하였다.

③ 러시아가 절영도 조차를 요구하였다.

④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⑤ 평양 관민이 대동강에 침입한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웠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05년 일제가 러일 전쟁의 승기를 잡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① 고종이 아관 파천을 단행하였다.

1896년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아관 파천을 단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하였다.

러일전쟁 중 일본은 한일 의정서를 빌미로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러시아가 절영도 조차를 요구하였다.

1897년 러시아가 절영도 조차를 요구하였지만, 독립 협회가 이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평양 관민이 대동강에 침입한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웠다.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일제의
국권 피탈
  • 제1차 영·일 동맹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제1차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 러시아의 용암포 점령

이후, 러시아가 압록강에 위치한 용암포를 강제로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 전시 국외 중립 선언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자 대한 제국은 ‘전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 러·일 전쟁 발발(1904년 2월)

인천항과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 한⋅일 의정서(1904년 2월)

러·일 전쟁 발생 직후, 일본은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일본군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일본의 동의 없이 제3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일 의정서를 강요하였다.

이때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하였다.

 

  • 제1차 한·일 협약(1904년 8월)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였다. 여기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 제2차 영·일 동맹(1905년 8월)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은 후,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

일본이 뤼순항을 함락하고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는 등 전쟁의 승기를 잡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제2조

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이 한국에 대해 정치와 군사 및 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관리, 감독,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또한 한국에 있는 러시아 제국 신민은 다른 외국인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러시아는 한국 영토의 안전을 위하여 일본이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동의한다.

 

  • 제2차 한·일 협약(을사늑약, 1905년 11월)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을사늑약으로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 나라 내정 전반에 걸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의 강제 퇴위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순종은 연호를 광무에서 융희로 바꿨다.

 

  •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1907년 7월)

이어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였으며,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실질적으로 한국을 지배하였다.

협약 내용

제1조 한국정부는 시정개선에 관해 통감의 지도를 받는다.

제2조 한국정부는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친다.

제3조 한국의 사법사무는 보통 행정사무와 구별한다.

제4조 한국 고등관리의 임면은 통감의 동의를 얻어 행한다.

제5조 한국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한다.

제6조 한국정부는 통감의 동의없이 외국인을 용빙할 수 없다.

 

  • 기유각서

일본은 1909년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사법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찰권을 빼앗았다.

 

  • 한⋅일 병합 조약(경술국치, 1910년 8월)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통감으로 왔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총독이 되었다.

을미개혁
  • 을미사변(1895년)

삼국 간섭 등으로 박영효가 실각한 뒤, 친러 성향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다.

이 때, 명성 황후는 친러파와 연결하여 일본의 침략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고, 이에 일본은 낭인을 동원하여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 제4차 김홍집 내각

을미사변 후 친일 성향의 제 4차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었다.

이후 을미개혁이 추진되었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건양’ 연호를 사용
    • 사회
      • 태양력 사용
      • 종두법 실시
      • 단발령 실시
      • 소학교 설치
      • 우체사 설치
    • 군사
      • 친위대와 진위대 설치

 

  • 중단
    • 을미의병

개항 이후 계속된 일본의 경제적, 정치적 침략과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항일 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 아관파천

1896년 명성 황후 시해사건으로 일본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처소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을미의병과 아관 파천으로 인하여 을미개혁은 중단되었다.

독립 협회의
이권 수호 운동

  • 배경

아관 파천 이후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은 조선의 이권 침탈에 열을 올렸다.

 

  • 독립 협회의 이권 수호 운동

독립 협회는 열강들의 이권 침탈에 저항하여 이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 내용

1897년 러시아가 일본의 선례에 따라 저탄소(석탄 저장소) 설치를 위해 절영도의 조차를 요구하자, 독립 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저탄소 철거까지 주장하여 마침내 러시아의 요구를 좌절시켰다.

또한 한·러 은행을 폐쇄하는데 성공했다.

개항 후
청·일본 상인의
상권 경쟁

  • 거류지 무역

개항 초기에는 외국 상인의 활동 범위가 개항장에서 10리 이내로 제한되어,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조선 중개 상인을 매개로 한 거류지 무역의 형태를 띠었다.

 

  • 중계무역

청일전쟁 이전 일본 상인들은 주로 영국산 면직물을 상하이 등지에서 매입하여 조선에 판매하고, 조선에서 곡물, 귀금속 등을 반출해 가는 중계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였다.

 

  • 청·일본 상인의 상권 경쟁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최혜국 대우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 상인들도 동일하게 보장받았다.

 

    • 조·일 통상 장정(1883년)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일본은 조·일 통상 장정 체결에 따라 최혜국 대우를 받아 상권을 확대할 수 있었다.

 

  • 결과

조선은 청과 일본 상인의 경쟁 무대가 되었다.

청과 일본 상인들이 개항장을 근거지로 삼아 내륙 시장까지 진출하자, 중개 무역으로 성장하던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조선 중개 상인은 자본을 동원할 힘이 부족해져 쇠퇴해 갔다.

1890년대 들어 일본으로 쌀이 대량 수출되면서 쌀값이 크게 오르자 지주들이 토지 구매에 나서면서 땅값이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일본 상인들은 일본산 면직물을 조선에 들여와 싸게 팔았다. 이에 따라 조선의 면방직 공업은 더욱 몰락해 갔다.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년 대포로 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들어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였다.

미국 선원들은 횡포를 부렸고, 이에 분노한 평양 관민이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 신미양요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공격하였다(신미양요, 1871년).

 

    • 전개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의 함대는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를 공격하였다.

어재연 등이 이끄는 조선의 수비대가 격렬하게 항전하였으나 광성보는 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협상에 응하지 않자 미군은 퇴각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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