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2번 기출 해설

문제

12. (가)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으로 옳은 것은? [1점]

① 윤관을 보내 동북 9성을 개척하였다.

② 상비군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③ 박위로 하여금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하였다.

④ 서희를 파견하여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였다.

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를 침입한 몽골과의 항쟁을 위해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들었다.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를 했다.

 

① 윤관을 보내 동북 9성을 개척하였다.

고려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상비군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임진왜란 중에 조선 정부는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박위로 하여금 쓰시마섬을 정벌하게 하였다.

고려 말, 왜구에게 많은 피해를 받자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서희를 파견하여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였다.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였다.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 몽골의 1차 침입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 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 몽골의 2차 침입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 몽골의 5차 침입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 피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 개경 환도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 삼별초의 항쟁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듦.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고려
거란의 침입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강감찬이 흥화진 전투에서 승리.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고려
여진 정벌
숙종 때 윤관의 지휘 아래 여진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나 실패하자,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

별무반 –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병인 항마군으로 편성

1107년, 예종 때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고, 동북면 지역에 동북 9성을 설치

1115년, 강성해진 여진족은 금을 건국. 금은 거란을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집권자였던 이자겸이 금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

임진왜란
  • 배경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년),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 발생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 강구

 

  • 임진왜란 발발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1592년).

송상현이 동래성에서 항전하였지만 패배

 

  • 이순신과 수군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 사용

 

  • 의병

의병은 경상도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김천일,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전투

함경도에서는 정문부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점령된 지역을 수복. 이를 북관대첩이라고 함.

 

  • 육군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평양성 전투).

권율 장군은 관군, 백성과 함께 합심하여 행주산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 방어(행주 대첩).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패배시킴(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 훈련도감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

 

  • 정유재란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1597년).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명량 해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

 

  • 임진왜란의 영향

조선 –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 부족.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

징비록 –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명의 군대 파견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 –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명 –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

고려
대장경 간행
  • 대장경 간행

고려에서는 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 체계가 정비되면서 불교에 관련된 서적을 모두 모아 체계화하는 대장경이 편찬되었다.

경⋅율⋅논의 삼장으로 구성된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교리 체계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적 의의가 높은 유산이다.

 

  • 초조대장경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70여 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이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가 남아 고려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 속장경(교장)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얼마 후, 의천은 고려는 물론이고 송과 요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속장경(교장)을 편찬하였다.

이를 위하여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0여년에 걸쳐 신라인의 저술을 포함한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다.

 

  •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잘못된 글자나 빠진 글자가 거의 없는 제작의 정밀성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꼽힌다.

왜구의 침입 공민왕 때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을 받았다.

최영, 이성계 등이 나서서 왜구를 토벌하였고, 최무선은 화포를 사용하여 왜구를 격퇴했다.

박위는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을 토벌했다.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의 무인 세력이 성장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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