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0번 기출 해설

문제

20.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②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화되었다.

③ 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④ 역사서를 편찬하고 사고에 보관하는 일을 맡았다.

⑤ 대사헌을 수장으로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시대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사헌부는 사간원, 홍문관과 함꼐 3사로 불렸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한성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화되었다.

비변사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서얼 출신 학자들이 검서관에 등용되었다.

규장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역사서를 편찬하고 사고에 보관하는 일을 맡았다.

춘추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대사헌을 수장으로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조선
중앙 정치 체제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중앙 관직인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 의정부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었다.

3정승의 합의에 의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 6조

6조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나누어 맡았다.

6조의 판서(장관)들은 행정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에는 의정부의 재상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졌다.

 

  • 3사

3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말한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이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3사의 기능 강화는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3사의 언관

벼슬 등급은 높지 않았으나,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주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중에 판서나 정승 등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 사헌부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또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했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 사간원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왕에게 간언, 논박.

사간원의 수장은 대사간이다.

 

    • 홍문관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 의금부

의금부는 국가의 큰 죄인을 다스렸다.

 

  • 승정원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으로, 왕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이 있었다.

 

  • 한성부

한성부는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했다.

 

  • 춘추관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했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 승무원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조선
비변사
  • 배경

붕당 정치가 전개되면서 정치 구조면에서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고, 3사의 기능이 바뀌는 등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 비변사의 설치

비변사는 16세기 중종 초에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회의 기구로 설치되었다.

명종 시기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관이 되었다.

 

  • 비변사의 기능 강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구성원이 3정승을 비롯한 고위 관원으로 확대되었고, 그 기능도 군사 문제뿐 아니라 외교, 재정, 사회, 인사 문제 등 거의 모든 정무를 총괄하였다.

이와 같이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자, 의정부와 6조 중심의 행정 체계는 유명무실해졌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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