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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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었습니다.
②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이 간행되었습니다.
③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출판되었습니다.
④ 잡지 사상계가 높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였습니다.
⑤ 아침 이슬 등의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도시를 중심으로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신문, 잡지와 같은 매체에 새로운 대중문화가 소개되어 유행하였다.
이에 ‘모던 걸, 모던 보이’와 같이 서양식 옷차림에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사람이 등장하였다.
당시 남촌의 거리는 서울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서 관공서, 은행, 백화점, 상가, 도로 포장, 신호등, 가로등, 네온등 등 근대 도시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①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영화계에서 나운규는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이 간행되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인 1898년 발행된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출판되었습니다.
1954년 이승만 정부 시기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출판되었습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잡지 사상계가 높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였습니다.
1953년 이승만 정부 시기 잡지 사상계가 창간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아침 이슬 등의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 아침 이슬 등의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변화 |
조선 총독부는 서울에 도시 개수 계획을 도입하여 도시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또,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 같은 전통 건물을 마구 헐어 내고, 총독부, 경성부 청사, 경성 역사 같은 관공서와 공공 시설, 공원, 학교 등을 잇따라 건립함에 따라 서울의 모습은 점차 식민지 도시 풍경으로 변해 갔다.
1930년 무렵 서울에는 10만여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 일본인은 본정(현 충무로), 명치정(현 명동), 황금정(현 을지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 거리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의 일본인 거리는 남촌, 북쪽의 한국인 거리는 북촌으로 불렀다. 당시 남촌의 거리는 서울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서 관공서, 은행, 백화점, 상가, 도로 포장, 신호등, 가로등, 네온등 등 근대 도시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북촌의 거리는 그렇지 못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도시를 중심으로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신문, 잡지와 같은 매체에 새로운 대중문화가 소개되어 유행하였다. 이에 ‘모던 걸, 모던 보이’와 같이 서양식 옷차림에 쇼핑과 외식을 즐기는 사람이 등장하였다. 서양 간식인 캐러멜이 소개되었다.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잡지가 창간되었다.
도시에 사람이 몰리면서 이전에 볼 수 없던 주택이 나타났다. 1920년대 이후에 상류층의 문화 주택, 중류층의 개량 한옥, 중⋅하류층의 영단 주택이 등장하였다. 서울 변두리에는 빈민이 토막집을 짓고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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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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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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