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8번 기출 해설

문제

28.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김옥균 등은 청이 우리 자주권을 침해하는 데 분노하여 일본 공사와 (가)을/를 일으켜 ‘일본당’으로 지목되었다. (가)이/가 실패하자 온 나라가 그를 역적이라 하였다. 나는 조정에 몸을 담고 있어 그를 토벌하여 죽여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옥균과 나의 마음은 그 뜻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 『속음청사』 –

① 개혁 추진 기구로 교정청이 설치되었다.

② 전개 과정에서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③ 통리기무아문이 신설되는 배경이 되었다.

④ 김기수가 수신사로 파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⑤ 청일 간에 톈진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에 들어갈 내용은 갑신정변이다.

1884년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

 

① 개혁 추진 기구로 교정청이 설치되었다.

제1차 갑오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전개 과정에서 홍범 14조가 반포되었다.

제2차 갑오개혁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통리기무아문이 신설되는 배경이 되었다.

개항 후,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김기수가 수신사로 파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항 후,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김기수가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청일 간에 톈진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갑신정변 후 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군이 철수할 것, 그리고 장차 조선에 파병할 경우 상대국에 미리 알릴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갑신정변
  • 배경

임오군란 후 청의 내정 간섭과 민씨 정권의 친청 정책으로 급진 개화파의 개화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에 김옥균은 개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서 차관을 얻으려 하였으나, 차관 교섭이 실패로 끝나면서 급진 개화파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마침 청은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조선에 주둔한 청군의 절반을 철수하였다.

급진 개화파는 이 틈을 타 민씨 정권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 전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사대당 요인들을 살해하고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조의 개혁 정강을 마련하였다(1884년).

 

  • 개혁 정강 주요 내용

청과의 의례적 사대 관계를 폐지하고, 입헌 군주제적 정치 구조를 지향하면서,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과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을 주장하였다.

또, 지조법을 실시하고, 호조로 재정을 일원화하였으며, 혜상공국을 폐지하여 자유로운 상업의 발전을 꾀하였다.

  • 지조법(地租法)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을 생산량 기준이 아니라 토지 가격에 따라 부과하는 방식. 종래의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일본에서 실시된 것을 수용한 것이었다.

  • 혜상공국(惠商公局)

보부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

갑신정변 때의 14개조 정강

1.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도록 하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4. 내시부를 없애고, 그 중에 우수한 인재를 등용한다.

5. 부정한 관리 중 그 죄가 심한 자는 치죄한다.

6.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

7. 규장각을 폐지한다.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지한다.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10.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

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14. 의정부, 6조 외의 모든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

 

  • 3일 천하

개화당 정부의 개혁은 청이 정변을 진압하고 일본군이 약속을 어기고 철수하면서 3일 천하로 끝이 났다.

정변을 주도하였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관에 피신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 결과
    • 한성 조약

조선은 일본의 강요로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비 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

    • 톈진 조약

청⋅일 양국은 조선에서 청⋅일 양국군이 철수할 것, 그리고 장차 조선에 파병할 경우 상대국에 미리 알릴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청국과 동등하게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었다.

    • 청의 내정 간섭 심화

갑신정변 실패 이후, 조선에 대한 청국의 내정 간섭이 더욱 강화되었다.

 

  • 갑신정변의 의의

갑신정변은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다.

 

  • 갑신정변 이후 정세
    • 거문도 사건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때 조러 비밀 협약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1885년).

    • 조선 중립화론

이렇듯 열강의 조선 침략이 격화되자, 조선 주재 독일 외교관인 부들러나 개화파 지식인 유길준 등은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자는 논의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제1차
갑오개혁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교정청

조선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주로 조세 개혁을 결정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군국기무처

입법권을 가진 초정부적인 개혁 추진 기구이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개국 기원 사용
      • 기존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
      • 궁내부를 신설하여 왕실 사무와 행정 사무 분리
      • 과거제 폐지
    • 경제
      • 탁지아문으로 재정의 일원화
      • 조세의 금납화
      • 도량형의 개정 통일
      • 은본위 화폐 제도를 채택
    • 사회
      • 공·사노비 제도를 혁파하고 신분제 폐지
      • 과부의 재혼 허용
      • 조혼 금지
제2차
갑오개혁
  • 배경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 제2차 김홍집 내각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내각제 도입
      • 8아문을 7부로 고쳐 내각을 편성
      • 지방 행정을 8도를 23부로 개편
      • 재판소 설치
      • 지방관 권한 축소(사법권과 군사권을 배제, 행정권만 행사)
    • 사회
      •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
    • 군사
      • 훈련대와 시위대 창설

 

  • 중단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개화 정책의
추진
  • 통리기무아문 설치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 군사 제도 개편
    • 2영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 별기군 창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 근대 시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수신사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 1차 수신사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 2차 수신사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 3차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 조사 시찰단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 영선사(1881년)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기기창

1883년 한성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이었다.

 

  • 보빙사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을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썼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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