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5번 기출 해설

문제

45. 다음 성명이 발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지금 이때 나의 단일한 염원은 3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달성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요구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 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선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 도는 원귀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런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①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② 송진우, 김성수 등이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③ 좌우 합작 위원회에서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④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⑤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결정되고, 미군정은 5월 총선거 실시를 발표하였다.

김구,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남북의 분단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구 등은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

 

①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송진우, 김성수 등이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45년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민주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미 군정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좌우 합작 위원회에서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1946년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좌우 합작 위원회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벌 등에 대한 좌우익의 의견을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과 김두봉 등이 참석하는 남북 연석 회의가 열렸다.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남북 협상

  • 배경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결정되고, 미군정은 5월 총선거 실시를 발표하였다.

 

  • 김구, 남북 협상 제의

김구,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남북의 분단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구 등은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

김구의 3천만 동포에게 눈물로 고함(1948. 2.).

한국이 있어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무슨 단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주독립적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는 이때 어찌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수 있으랴?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 남북 연석 회의

1948년 4월, 평양에서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과 김두봉 등이 참석하는 남북 연석 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모스크바의 3국 외상 회의에서는 한국에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고 5년간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신탁 통치(信託統治)

한민족이 완전한 독립 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미⋅영⋅중⋅소 4개국이 한반도를 최고 5년간 공동 관리하겠다는 방안

 

  • 국내 반응
    • 우익

우익인 민족주의 진영은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신탁 통치 반대 운동(반탁)을 펼쳤다.

민족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반탁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승만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를 조직하고 반탁 운동을 전개하였다.

 

    • 좌익

좌익인 공산주의 진영은 초기에는 신탁 통치에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3국 외상 회의 결정의 본질이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에 있다고 보고, 회의 결정에 대한 총체적 지지로 입장(찬탁)을 바꾸었다.

광복 직후
국내 정세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건준은 전국에 지부와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또한 건준은 미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 조직을 정부 형태로 개편하고 각 지부도 인민 위원회로 바꾸어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1945년 그 해에 해산하였다.

 

  • 기타 정당 활동
    • 한국 민주당

1945년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민주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미 군정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귀국하여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 한국 독립당

김구는 귀국 후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국민당

1945년 안재홍은 국민당을 조직하였다.

 

    • 조선 인민당

조선 인민당은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당이다.

 

    • 남조선 노동당

1946년 박헌영은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을 조직하였다.

좌우 합작 운동
  • 배경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하였다.

 

  • 좌우 합작 운동(1946년)

단독 정부 수립에 따른 분단을 막기 위해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하여 통일 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미군정도 한국인의 지지를 얻고 소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좌우 합작 위원회를 지원하였다.

 

  • 좌우 합작 7원칙

좌우 합작 위원회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벌 등에 대한 좌우익의 의견을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미 군정은 이 원칙을 근거로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좌우 합작 7원칙 중 신탁 통치, 토지 개혁, 친일파 처벌 문제 등에서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충돌하였다.

 

  • 여운형 암살

그러다 여운형이 한치근에 의해 암살되면서 좌우 합작 운동은 중단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 5⋅10 총선거

1948년 5월 10일,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5⋅10 총선거는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 원칙에 따라 치러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였다.

총선거를 통해 임기 2년의 198명의 제헌 국회 의원이 선출되었다.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 참가 세력과 많은 중도계 인사가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 제헌 헌법 공포

1948년 7월 17일 총선거를 구성된 제헌 국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삼권 분립에 바탕을 둔 헌법을 공포하였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3·1 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으며, 국민 주권에 바탕을 둔 민주 공화국임을 명시하였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였으나,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제 방식으로 선출하도록 하였다.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제헌 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총선거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광복 직후
국내 정세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건준은 전국에 지부와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또한 건준은 미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 조직을 정부 형태로 개편하고 각 지부도 인민 위원회로 바꾸어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1945년 그 해에 해산하였다.

 

  • 기타 정당 활동
    • 한국 민주당

1945년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민주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미 군정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귀국하여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 한국 독립당

김구는 귀국 후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국민당

1945년 안재홍은 국민당을 조직하였다.

 

    • 조선 인민당

조선 인민당은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당이다.

 

    • 남조선 노동당

1946년 박헌영은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을 조직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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