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2번 기출 해설

문제

12.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한국사 탐구 보고서

▣ 주제 : 인물로 보는 무신 정권

▣ 방법: 문헌 조사, 인터넷 검색 등

▣ 조사 내용

인물 내 용
정중부 보현원에서 이의방 등과 정변을 일으킴
이의민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최충헌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요구함
(가) 야별초를 좌·우별초로 나누어 편성함

①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 창을 즉위시켰다.

② 9재 학당을 설립하여 유교 교육에 힘썼다.

③ 인사 행정 담당 기구로 정방을 설치하였다.

④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로서 개혁을 이끌었다.

⑤ 오월에 사신을 보내고 검교태보의 직을 받았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는 최충헌의 아들이자 무신정권 집권자인 최우이다.

 

①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 창을 즉위시켰다.

무신 집권자 임연에 대한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9재 학당을 설립하여 유교 교육에 힘썼다.

고려 문종 때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하여 유교 교육에 힘썼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인사 행정 담당 기구로 정방을 설치하였다.

최우는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하였고,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로서 개혁을 이끌었다.

고려 공민왕은 승려 신돈을 등용하고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개혁을 이끌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오월에 사신을 보내고 검교태보의 직을 받았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최충헌 –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사병으로 조직된 도방과 함께 삼별초가 군사적 기반

야별초를 좌·우별초로 나누어 편성하기도 함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고려
공민왕
  • 기철로 대표되던 친원 세력을 숙청
  • 원의 간섭으로 바뀌었던 관제를 복구며, 몽골 풍속을 금지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 쌍성총관부 공격, 철령 이북의 땅 수복
  • 정방 폐지
  • 승려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
  • 성균관 개편
  •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해 오자 공민왕은 멀리 안동(복주)까지 피란
  •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 받음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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