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42. 다음 일기가 작성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1점]
| 7월 13일(화)
경성은 뉴스를 듣기에는 참으로 빠르다. …… 중·일은 전쟁을 하게 되었다. …… 아아, 슬프다. 조선에서도 만약 이러한 때 영웅 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회복할 가망이 많은데, 나는 아직 지위가 그렇지 않아 가슴만 태운다. 피만 끓는다. 영웅이여 일어서라 일어서라. 우리 조선은 영원히 죽었는가. |
10월 8일(금)
조회할 때 일본인들이 조선인의 심장을 자기들의 심장으로 하려는 일본의 계략에서, 총독 미나미 지로가 소위 황국신민의 서사인지 뭔지를 만들어서 각 학생에게 암송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나도 그것을 읽었다. 그러나 우리 조선 혼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
①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었다.
② 치안 유지법이 제정되었다.
③ 조선사 편수회가 조직되었다.
④ 여자 정신 근로령이 공표되었다.
⑤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일제는 문화 통치에서 민족 말살 통치로 전환하면서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황국 신민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1937년부터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을 강요하였다.
① 미쓰야 협정이 체결되었다.
1925년 일제는 만주 군벌과 미쓰야 협정을 맺어 공동으로 독립군을 소탕하고 체포된 독립군을 일본측에 인도하기로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치안 유지법이 제정되었다.
일제는 1925년 치안 유지법을 만들어 사회주의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조선사 편수회가 조직되었다.
1925년 조선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주의 사관을 토대로 조선사를 편찬하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여자 정신 근로령이 공표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이 시행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동양 척식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일제은 1908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세워 일본인이 조선의 토지를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1920년대 후반에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제는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노동력과 자원은 일제에게 보다 철저히 수탈당하였다. 그 후 일제는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만주사변), 더 나아가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면서 한국을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는 식민 정책을 강화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탄압하였고, 모든 방면에 걸쳐 식민지 수탈 정책을 강화하였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국왕에 대한 숭배 사상을 주입하는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효율적으로 동원하려는 의도였다.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일제는 일본에 필요한 공업 제품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면화의 재배와 면양의 사육을 시도하는, 이른바 남면 북양 정책을 수립하였다.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의 수탈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제는 강제 징용으로 한국인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학도 지원병 제도, 징병 제도 등을 실시하여 수많은 우리 젊은이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 정신을 뿌리뽑기 위해 이른바 일⋅선 동조론을 주장하였고, 내선 일체의 구호를 내세워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또한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쳐 쓰도록 하고(창씨개명), 황국 신민 서사 암송(1937년), 궁성 요배, 신사 참배 등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1941년 소학교의 명칭을 ‘황국 신민 학교’라는 뜻의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일제는 제3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선택 과목)하여,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일제는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1940년에는 한글을 사용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을 폐간하였다.
1930년대부터 일제는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사상까지 통제하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중일전쟁 후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침략 전쟁에서 한국인의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 조선 연맹을 조직하였다. 연맹의 가장 하부에는 애국반을 조직하였고, 반상회를 통해 일본어 사용, 전쟁을 위한 애국 저금 등의 정책을 홍보하였다. 1940년 초 일제가 강점기 막바지에 여성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몸뻬를 고안해 냈다. 1936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은 <치안 유지법> 위반자 중 집행 유예, 형 집행 종료 또는 가출옥한 사람을 대상으로 2년간 보호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었다. 1941년 제정된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이에 더 나아가서 <치안 유지법>을 위반하여 형에 처해진 경력이 있는 자를 그 집행을 마치고 석방된 이후에도 필요한 경우 검경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자의적으로 계속하여 구금하거나 일정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반인권적 조치였다. |
|||||||||||||||
| 일제의 국가 총동원법 |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였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이 부족해지자 수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동원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제는 1943년에 학도 지원병 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학생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1938년 지원병제, 1943년 학도 지원병제, 1944년 징병제 시행.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9년 국민 징용령, 1944년 여자 정신 근로령 시행.
일제는 수많은 여성들을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삶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놋그릇, 놋대야, 수저, 농기구, 교회와 사찰의 종 등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금속 제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빼앗았다.
일제는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산미 증식 계획을 다시 시행하였다.
일제는 농가마다 목표량을 정해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
||||||||||||||
3·1 운동을 계기로 민족 지도자들은 비폭력 항일 운동으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조국 광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장 독립 전쟁의 조직적인 전개가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1920년 6월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은 최진동의 군무 도독부군, 안무의 국민회 독립군과 연합하여, 봉오동을 기습해 온 일본군을 포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봉오동 전투이다.
봉오동 전투에서 패패한 일제는 중국 마적들을 매수하여 훈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게 하였고(훈춘 사건), 이를 독립군의 소행이라 주장하며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독립군을 공격하였다. 1920년 10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 연합 부대는 청산리 일대 백운평, 완루구, 어랑촌, 고동하 등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의 전투 끝에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것이 청산리 전투이다.
일본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 참변을 일으켜 우리 동포를 학살였다.
독립군은 한때 각지로 분산하여 대오를 재정비하였고, 그 중 4000여 명 규모의 주력 부대는 소⋅만 국경에 위치한 밀산부에 집결하였다. 그 곳에서 서일을 총재로 하는 대한 독립 군단을 조직한 후, 일본군의 추격을 피하여 소련 영토 내로 이동하였다.
독립군은 그 곳에서 한국인의 민족 운동을 지원한다고 하는 적색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하였고, 적색군을 도와 내전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적색군은 내전에 승리한 후 독립군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려 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공격함으로써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야기하였다. 이로 인해 독립군 세력이 와해되었다.
독립군은 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으로 큰 시련을 겪고 만주로 돌아와 조직을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3부로 재정비하였다. 이들 3부는 한인 사회를 자치적으로 이끌어 가는 민정 조직과 독립군의 훈련 및 작전 등을 담당하는 군정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압록강 연안 지역을 담당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직할하에 육군 주만 참의부가 설립되었다.
남만주 지린성과 봉천성 일대를 담당했다.
북만주 지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독립군은, 일제와 만주 군벌 사이에 독립군의 탄압을 위하여 맺어진 이른바 미쓰야 협정에 의해 다시금 큰 타격을 받았다. 이 협정은 일제와 만주 군벌이 공동으로 독립군을 소탕하고 체포된 독립군을 일본측에 인도한다는 내용이었다.
1920년대 후반 제1차 국공 합작의 영향으로 중국 관내에서는 안창호 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이루려는 민족 유일당 운동이 전개되었다.
3부 통합 운동이 일어나 남만주에는 국민부가, 북만주에는 혁신 의회가 조직되었다. 양세봉 등이 중심이 된 국민부는 조선 혁명당을 결성하고, 그 아래에 조선 혁명군을 조직하였다. 지청천 등이 중심이 된 혁신 의회는 해체된 후, 한국 독립당과 한국 독립군이 창설되었다.
|
|||||||||||||||
우리 민족의 거족적인 3⋅1 운동과 그로 인하여 악화된 국제 여론에 직면한 일제는 식민 통치 정책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일제의 문화 통치는 친일파를 길러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시키려는 정책으로서, 우리 민족의 단결을 억제하고 독립 운동을 막으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제는 지금까지 현역 군인으로 조선 총독을 임명, 파견하던 것을 고쳐 문관도 그 자리에 임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일제가 축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문관 총독도 임명되지 않았다.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 그리고 그 유지비는 3⋅1 운동 이전보다 크게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 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시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언론에 대해서 검열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기사는 마음대로 삭제하였고, 더 나아가 신문의 정간을 다반사로 하였으며, 폐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는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을 통해 보통 학교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6년,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5년으로 연장하였다. 또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수는 여전히 부족했고, 조선인의 취학률이 일본인보다 낮았다.
일제는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부 면 합의회를 민선으로 구성하고 도 평의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 기구일 뿐이었고, 일본인이나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이용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문화 통치에 동조한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며 민족 운족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
|||||||||||||||
일제는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거나 말살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을 주장하는 식민주의 사관을 앞세워 한국사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부정하였다.
1925년 조선 총독부가 설치한 조선사 편수회는 식민주의 사관을 토대로 조선사를 편찬하여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다.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의 발전 주체가 우리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학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힘을 기울였다.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다. 또한 그는 민족 정신을 혼(魂)으로 파악하여, 혼이 담겨 있는 민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를 지어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다. 또한 독사신론을 저술하였다. 신채호는 낭가 사상을 강조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민족주의 사학은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으로 계승되었고, 이들은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인보는 ‘얼’ 사상을 강조하였다. 문일평은 ‘조선심’을 강조했다. 다산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아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실증 사학자들은 문헌 고증으로 객관적인 역사 서술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역사가의 주관적인 판단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이병도 등은 1934년 진단 학회를 조직하고 진단 학보를 발간하였다.
1930년대에는 백남운 등에 의해 사회 경제 사학이 대두되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저술하였다.
손진태는 조선민족사개론을 저술하였다. |
|||||||||||||||
일제는 러⋅일 전쟁 중에 철도 부지와 군용지 확보를 구실로 국유지, 사유지, 황실 소유의 토지 등을 빼앗았다.
이후 일제은 여러 가지 구실로 많은 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키고,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내세워 일본인이 토지를 늘릴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
|||||||||||||||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4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5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6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7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8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9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0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1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2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3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4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5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6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7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8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9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0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1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2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3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4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5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6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7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8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9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0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1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2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3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4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5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6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7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8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9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0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1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2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3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4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5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6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7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8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9번 기출 해설
-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50번 기출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