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3번 기출 해설

문제

33. 밑줄 그은 ‘개혁’의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군국기무처를 두었다.

② 행정 기구를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하였다.

③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인 기기창을 설립하였다.

④ 토지 소유권을 확인해 주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⑤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아관파천 후,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 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군국기무처를 두었다.

제1차 갑오개혁 당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군국기무처를 두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행정 기구를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하였다.

제1차 갑오개혁 당시 행정 기구를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인 기기창을 설립하였다.

개항 후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1883년 기기창을 설립하여 서양 무기를 제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토지 소유권을 확인해 주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제2차 갑오개혁 당시 고종은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배경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 대한 제국 선포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환구단(원구단)

 

  • 광무개혁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 정치 개혁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 경제 개혁
    • 양전 사업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 식산흥업 정책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 금본위 지폐 시도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 내장원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 전환국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 사회 개혁
    • 실업 교육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 군사 개혁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 외교 활동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제1차
갑오개혁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교정청

조선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주로 조세 개혁을 결정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군국기무처

입법권을 가진 초정부적인 개혁 추진 기구이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개국 기원 사용
      • 기존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
      • 궁내부를 신설하여 왕실 사무와 행정 사무 분리
      • 과거제 폐지
    • 경제
      • 탁지아문으로 재정의 일원화
      • 조세의 금납화
      • 도량형의 개정 통일
      • 은본위 화폐 제도를 채택
    • 사회
      • 공·사노비 제도를 혁파하고 신분제 폐지
      • 과부의 재혼 허용
      • 조혼 금지
제2차
갑오개혁
  • 배경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유리해지자 조선의 내정에 적극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일본에서 망명 중이던 박영효를 불러들였다.

1894년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을 구성하여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 제2차 김홍집 내각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이는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을 지녔다.

홍범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典範)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 및 각 아문(衙門)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아니한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내각제 도입
      • 8아문을 7부로 고쳐 내각을 편성
      • 지방 행정을 8도를 23부로 개편
      • 재판소 설치
      • 지방관 권한 축소(사법권과 군사권을 배제, 행정권만 행사)
    • 사회
      •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
    • 군사
      • 훈련대와 시위대 창설

 

  • 중단

당시 일본이 삼국 간섭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내각 대신들, 특히 내무 대신 박영효의 주도하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민비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된 박영효가 민씨 일파에 의해 실각됨에 따라 개혁은 중단되었다.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랴오둥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개화 정책의
추진
  • 통리기무아문 설치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 군사 제도 개편
    • 2영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 별기군 창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 근대 시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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