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6번 기출 해설

문제

36.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②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수업하는 교사

③ 잡지 어린이에 실을 원고를 작성하는 작가

④ 토월회에서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배우

⑤ 경성 고무 여자 직공 조합의 파업을 취재하는 기자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일제는 무단 통치 시기,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 1912년)에 처했다.

일제 무단 통치 시기는 국권이 피탈된 1910년부터 3⋅1 운동이 있었던 1919년까지이다.

 

① 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1923년 전라도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이 친일 지주 문재철의 횡포와 일본 경찰의 탄압에 맞서 암태도 소작 쟁의를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수업하는 교사

일제는 무단 통치 시기,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지도자들은 체포, 투옥, 학살당하였다.

또, 일반 관리는 물론 학교 교원들에게까지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잡지 어린이에 실을 원고를 작성하는 작가

1921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천도교 소년회가 만들어졌다.

1922년 천도교 소년회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으며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를 발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토월회에서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배우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경성 고무 여자 직공 조합의 파업을 취재하는 기자

1923년 경성고무공장 여공들의 파업이 있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일제의
무단 통치

  • 1910년 ~ 1919년

 

  • 조선 총독부

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현역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임명되어 식민 통치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은 일본 국왕에 직속되어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및 군대 통수권까지 장악하였다.

 

  • 중추원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구로 중추원을 두어 한국인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 헌병 경찰 통치

일제는 한반도에는 일본군 2개 사단과 2만여 명의 헌병 경찰 및 헌병 보조원을 배치하여 강력한 헌병 경찰 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지도자들은 체포, 투옥, 학살당하였다.

또, 일반 관리는 물론 학교 교원들에게까지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하였던 것은 위협적인 헌병 경찰 통치의 한 수단이었다.

 

  • 즉결 처분권

일제는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 1912년)에 처하기도 하였다.

조선 태형령(1912)

제11조 태형은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비밀리에 행한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

 

  • 민족 언론 탄압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 제1차 조선 교육령(1911년)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한국인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중심으로 편성하여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였다. 또한 민족 교육을 강조하던 사립 학교를 탄압하였다.

1918년 일제는 <서당 규칙>을 통해 서당 설립을 인가제(허가제)로 바꾸었다.

 

  • 105인 사건(1911년)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하여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농민 운동
  • 배경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 증식 계획으로 농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농민들은 수확량의 절반이 넘는 소작료와 세금 등을 부담하였기 때문에 식량 부족과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결국 많은 농민이 자작농에서 자소작농으로, 자소작농에서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 노동자로 몰락하였다

 

  • 1920년대 농민 운동

1920년대 들면서 농민들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 암태도 소작 쟁의

1923년 전라도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이 친일 지주 문재철의 횡포와 일본 경찰의 탄압에 맞서 암태도 소작 쟁의를 벌였다.

 

    • 조선 농민 총동맹

1927년 전국적인 농민 운동 단체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어 농민 운동의 규모와 조직이 한층 발전하였다.

 

  • 1930년대 농민 운동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공황의 영향으로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고, 농민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농민 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이 시기 농민 운동은 반제국주의 항일 운동의 모습을 보였다.

소년 운동
  • 방정환과 천도교 소년회

소년 운동은 1921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천도교 소년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 어린이

방정환은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라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구호

아이에서 어린이로!

 

  • 어린이날 제정

1922년 천도교 소년회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 잡지 <어린이>

천도교 소년회는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를 발행하였다.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종교
    • 천도교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 대종교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 원불교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신교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 문학
    • 1910년대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 1920년대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 1930년대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 예술
    • 음악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애리수, 황성옛터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텅 빈 밤과 서정
윤심덕, 사의 찬미 비극적인 삶으로 빚어낸 염세와 허무
고복수, 타향살이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이들의 짙은 향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항구를 배경으로 그리는 이별과 눈물의 정서

 

    • 미술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 연극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 영화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 기타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노동 운동
  • 배경

1920년대에는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에 따라 산업 노동자 수가 점차 늘어났다. 동시에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 이상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힘겨운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임금은 대부분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일본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한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민족 차별 등은 노동자의 계급 의식과 민족 의식을 불러일으켜 노동 운동을 벌이는 배경이 되었다.

 

  • 1920년대 노동 운동

1920년대에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은 지역별 직업별로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 단체에 참여하여 노동 조건과 민족 간 차별 대우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1923년 경성고무공장 여공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1924년에는 조선 노농 총동맹이 만들어졌다

 

  • 조선 노동 총동맹

1927년 조선 노농 총동맹이 조선 농민 총동맹과 조선 노동 총동맹으로 분리되었고, 조선 노동 총동맹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각 지방의 노동 쟁의를 이끌면서 노동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 원산 총파업

1929년 원산 라이징 선 석유회사에서 원산 노동 연합회 주도로 4개월간의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 파업은 전국적으로 지지와 성원을 받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노동자도 격려 전문을 보내와 국제적 연대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 1930년대 노동 운동

일제는 1930년대에 대륙 침략 전쟁에 필요한 군수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군수 공업 시설을 확충하고, 지하 자원을 약탈하였으며, 노동력을 동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일제는 한국 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인하하고, 노동 시간을 연장하였으며, 각종 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하였다.

1930년대 노동 운동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비합법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노동 운동은 반제국주의 항일 운동의 성격을 보였다.

1931년 평원고무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강주룡은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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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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