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7번 기출 해설

문제

37. 다음 법령이 발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① 국권 회복을 위해 해조신문이 창간되었다.

② 평양 숭의 여학교에서 송죽회가 결성되었다.

③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④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공포되었다.

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창립을 위한 총회가 개최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일제는 문화 통치 시기 중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을 통해 보통 학교(현재의 초등학교)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6년,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5년으로 연장하였다.

 

① 국권 회복을 위해 해조신문이 창간되었다.

해조신문은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평양 숭의 여학교에서 송죽회가 결성되었다.

1913년 평양 숭의 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송죽회를 결성하여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의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메가타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러일 전쟁 중 일본은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대한 제국에 메가타를 재정 고문으로 파견하였다.

1905년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공포되었다.

1910년 일제는 민족 기업을 규제하기 위하여 회사령을 제정, 공포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창립을 위한 총회가 개최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자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된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만들어졌다(1922년).

이를 바탕으로 출범한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는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일제의
문화 통치

  • 1920년 ~ 1936년

 

  • 배경

우리 민족의 거족적인 3⋅1 운동과 그로 인하여 악화된 국제 여론에 직면한 일제는 식민 통치 정책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일제의 문화 통치는 친일파를 길러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시키려는 정책으로서, 우리 민족의 단결을 억제하고 독립 운동을 막으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 문화 통치의 실상
    • 문관 총독 임명

일제는 지금까지 현역 군인으로 조선 총독을 임명, 파견하던 것을 고쳐 문관도 그 자리에 임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일제가 축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문관 총독도 임명되지 않았다.

 

    • 보통 경찰 제도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 그리고 그 유지비는 3⋅1 운동 이전보다 크게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 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시켰다.

 

    • 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언론에 대해서 검열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기사는 마음대로 삭제하였고, 더 나아가 신문의 정간을 다반사로 하였으며, 폐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 교육

일제는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을 통해 보통 학교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6년,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5년으로 연장하였다.

또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수는 여전히 부족했고, 조선인의 취학률이 일본인보다 낮았다.

 

    • 부·면 합의회, 도 평의회

일제는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부 면 합의회를 민선으로 구성하고 도 평의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 기구일 뿐이었고, 일본인이나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 치안 유지법(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이용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 자치론의 등장

문화 통치에 동조한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며 민족 운족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
  • 배경

1910년대 한국인 교육은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에 치중되었고,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한국인도 많지 않았다.

3·1운동 이후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가 높아졌고, 제2차 조선 교육령에 따라 대학 설립이 가능해지자 실력 양성 운동 차원에서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을 설립하자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 전개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된 조선 교육회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가 만들어졌다(1922년).

이를 바탕으로 출범한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는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였다.

 

  • 결과

그러나 일제가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방해하고, 잇따른 자연재해로 모금 운동이 어려워지면서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실패하였다.

한편 일제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을 교육하고 한국인의 교육열을 무마하기 위해 1924년에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하였다.

일본의
화폐 정리 사업과
금융 장악

  • 배경

러일 전쟁 중 일본은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대한 제국에 메가타를 재정 고문으로 파견하였다.

 

  • 화폐 정리 사업(1905년)

메가타의 주도 하에,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었다.

조선의 화폐였던 백동화와 엽전을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하는 일본 화폐인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교환하게 했다.

백동화의 품질에 따라 갑, 을, 병 3등급으로 구분하여 교환해 줬는데, ‘병’ 등급에 해당하는 백동화는 교환이 거부되어 조선 상인들이 타격을 입었다.

 

  • 일본 제일은행

화폐 정리 사업 과정에서, 일본의 제일은행이 중앙 은행 기능을 맡도록 하여 대한제국의 금융 정책을 지배하게 되었다.

 

  • 일본의 차관 제공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대한 제국의 화폐 정리와 시설 개선의 명목으로 차관을 강요하였다.

일본의 차관 제공 정책은 대한 제국을 재정적으로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었다.

1910년대
국내 비밀 결사
  • 독립 의군부(1912년)

임병찬 등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국내에서 전국 각지의 유생들을 모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복벽주의 이념에 따라 고종의 복위를 목표로 전국적인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와 일본 정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려고 계획하던 중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체되었다.

 

  • 대한 광복회(1915년)

박상진, 김좌진 등은 대구에서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공화정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대한 광복회는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독립군 양성, 무기 구입, 군자금 모집, 친일 부호 처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 송죽회(1913년)

평양 숭의 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송죽회를 결성하여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의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근대 언론 기관의
발달

  • 한성순보

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 한성주보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 독립신문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 황성신문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 제국신문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 해조신문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 대한매일신보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 만세보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 신문지법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신문지를 발행하려는 자는 발행지를 관할하는 관찰사를 경유하여 내무대신에게 청원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문지법-

일제의
산업 침탈

  • 회사령 공포

1910년 일제는 민족 기업을 규제하기 위하여 회사령을 제정, 공포하였다.

회사령

제1조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2조 조선 외에서 설립한 회사가 조선에 본점이나 지점을 설립하고자 할 때는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5조 회사가 본령이나 본령에 의거하여 발하는 명령과 허가 조건에 위반하거나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 조선 총독은 사업의 정지, 지점의폐쇄, 또는 회사의 해산을 명한다.

 

  • 회사령 허가제

회사령은 기업의 설립을 총독의 허가제로 하고, 허가 조건을 위반할 때에는 총독이 사업의 금지와 기업의 해산을 명할 수 있게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기업 활동이 억압되고 민족 산업의 성장이 저해되었다.

 

  • 임업

임업 부문에서 산림령에 따른 임야 조사 사업이 실시되어, 막대한 국⋅공유림과 소유주가 명확하지 않았던 임야가 거의 일본인에게 넘어가 전체 임야의 50% 이상이 조선 총독부와 일본인에게 점탈되었다.

 

  • 어업

조선 총독부는 어업령을 공포하여 일본 어민의 성장을 지원하고 우리 어민의 활동을 억압하였다.

 

  • 광업

조선 총독부는 전국의 광산 자원을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우리 민족의 광업 활동을 제약하는 광업령을 제정, 공포한 후 일본인 재벌에게 많은 광산을 넘겼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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