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14번 기출 해설

문제

14.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2점]

(가) 이자겸과 척준경이 군사를 동원하여 궁궐을 침범하고 불태웠다. 왕을 위협하여 남궁(南宮)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고, 안보린· 최탁 등 17인을 죽였다. 이외에도 죽인 군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나) 왕규가 광주원군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는데, 일찍이 밤에 왕이 깊이 잠든 것을 엿보고 자신의 일당을 침소에 잠입시켜 대역죄를 행하려고 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주먹으로 쳐 죽인 후 좌우 시종들에게 끌어내게 하였다.

(다) 강조의 군사들이 들어오자, 왕이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태후와 함께 목 놓아 울며 법왕사로 갔다. 잠시 후 황보유의 등이 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렸다. 강조는 왕을 폐위시켜 양국공으로 삼고, 군사를 보내 김치양 부자와 유행간 등 7인을 죽였다.

① (가) – (나) – (다)

② (가) – (다) – (나)

③ (나) – (가) – (다)

④ (나) – (다) – (가)

⑤ (다) – (가) – (나)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는 고려 인종 시기인 1126년에 발생한 이자겸의 난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고려 혜종 시기인 945년에 발생한 왕규의 난에 대한 내용이다.

(다)는 고려 목종 시기인 1009년에 발생한 강조의 정변에 대한 내용이다.

 

정답은 ④번이다.

 

고려
이자겸의 난
  • 문벌 귀족 경원 이씨

11세기 이래 대표적인 문벌 귀족인 경원 이씨 가문은 왕실의 외척이 되어 80여 년 간 정권을 잡았다.

경원 이씨는 이자연의 딸이 문종의 왕비가 되면서 정치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고, 이자연의 손자인 이자겸도 예종과 인종의 외척이 되어 집권하였다.

특히, 이자겸은 예종의 측근 세력을 몰아 내고 인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하면서 그 세력이 막강해졌다.

 

  • 이자겸의 난

이자겸의 세력은 문벌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고, 금과 타협하는 정치적 성향을 보였다.

이러한 이자겸의 권력 독점에 반대한 왕의 측근 세력은 왕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이에 이자겸은 반대파를 제거하고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고려 인종 1126년).

그러나 이자겸이 척준경에 의하여 몰려나고 척준경도 탄핵을 받고 축출됨으로써 이자겸 세력은 몰락하였다.

이자겸의 난은 중앙 지배층 사이의 분열을 드러냄으로써 문벌 귀족 사회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
거란의 침입
거란의 1차 침입 – 993년 고려 성종 때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 서희의 담판 외교로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 확보

거란의 2차 침입 – 1010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즉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강화를 맺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

거란의 3차 침입 – 1018년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다시 10만의 대군으로 침입. 1019년 강감찬이 지휘한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킴(귀주대첩)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개경에 나성을 쌓아 도성 수비를 강화하고,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음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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