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0번 기출 해설

문제

30. 밑줄 그은 ‘이 장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임오군란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② 거중 조정의 조항을 포함하였다.

③ 방곡령을 선포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하였다.

④ 부산항과 원산항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⑤ 외국인을 재정 고문으로 두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은 청과 일본 상인의 경쟁 무대가 되었다.

청과 일본 상인들이 개항장을 근거지로 삼아 내륙 시장까지 진출하자, 중개 무역으로 성장하던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조선 중개 상인은 자본을 동원할 힘이 부족해져 쇠퇴해 갔다.

 

① 임오군란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임오군란 이후 청은 조선의 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였다.

조선은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체결로 청나라 상인의 통상 특권을 허용하게 되고, 경제적 침략을 받게 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거중 조정의 조항을 포함하였다.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882년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서양과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일본과 체결한 조약과는 달리 거중 조정, 관세 부과 조항을 포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방곡령을 선포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하였다.

1883년에 체결된 조일 통상 장정에 미곡 유출을 제한하는 방곡령 시행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부산항과 원산항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외국인을 재정 고문으로 두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1904년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개항 후
청·일본 상인의
상권 경쟁

  • 거류지 무역

개항 초기에는 외국 상인의 활동 범위가 개항장에서 10리 이내로 제한되어,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조선 중개 상인을 매개로 한 거류지 무역의 형태를 띠었다.

 

  • 중계무역

청일전쟁 이전 일본 상인들은 주로 영국산 면직물을 상하이 등지에서 매입하여 조선에 판매하고, 조선에서 곡물, 귀금속 등을 반출해 가는 중계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였다.

 

  • 청·일본 상인의 상권 경쟁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최혜국 대우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 상인들도 동일하게 보장받았다.

 

    • 조·일 통상 장정(1883년)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일본은 조·일 통상 장정 체결에 따라 최혜국 대우를 받아 상권을 확대할 수 있었다.

 

  • 결과

조선은 청과 일본 상인의 경쟁 무대가 되었다.

청과 일본 상인들이 개항장을 근거지로 삼아 내륙 시장까지 진출하자, 중개 무역으로 성장하던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조선 중개 상인은 자본을 동원할 힘이 부족해져 쇠퇴해 갔다.

1890년대 들어 일본으로 쌀이 대량 수출되면서 쌀값이 크게 오르자 지주들이 토지 구매에 나서면서 땅값이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일본 상인들은 일본산 면직물을 조선에 들여와 싸게 팔았다. 이에 따라 조선의 면방직 공업은 더욱 몰락해 갔다.

외국과의
조약 체결
  • 조미 수호 통상 조약(1882년)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조선책략>에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 청의 알선과 조약 체결

조선은 청의 알선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년).

    • 내용

서양과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일본과 체결한 조약과는 달리 거중 조정, 관세 부과 조항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고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최혜국(最惠國) 대우

통상, 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것

거중 조정

거중조정은 조선이 타 국가와 분쟁을 겪거나 침략을 받았을 때 미국이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뜻한다.

 

  •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체결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에 따라 청 상인은 지방관의 허가를 받으면 개항장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은 최혜국 대우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 상인들도 동일하게 보장받았다.

 

  • 조불(프랑스) 수호 통상 조약(1886년)

이 조약으로 인해 천주교 포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 운요호 사건

1875년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냈다.

운요호의 예고 없는 접근에 강화도의 수비대가 포격을 가하자 운요호는 영종도에 상륙하여 살인, 약탈,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대를 보내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운요호

 

  •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조선 정부는 논의를 거쳐 개항을 결정하고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체결하였다(1876년).

당시 회담 모습

 

  • 성격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 내용

강화도 조약은 첫 번째 조항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3개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에게 조선의 연안에 대한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하였다.

 

  • 조일 수호 조규 부록(1876년)

이어서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 조약의 부속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에서는 거류지 설정과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의 유통을 허용하였다.

 

  • 조일 무역 규칙(1876년)

조일 무역 규칙에서는 양곡의 수출입 허용, 정부 소속 일본 선박의 항세 면제 등을 규정하였고 이후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를 허용하였다.

 

  • 조일 통상 장정(1883년)

관세 규정, 미곡 유출 제한(방곡령 시행 규정), 최혜국 대우 인정.

최혜국(最惠國) 대우

통상, 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부여하는 것

일제의
국권 피탈
  • 제1차 영·일 동맹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제1차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 러시아의 용암포 점령

이후, 러시아가 압록강에 위치한 용암포를 강제로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 전시 국외 중립 선언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자 대한 제국은 ‘전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 러·일 전쟁 발발(1904년 2월)

인천항과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 한⋅일 의정서(1904년 2월)

러·일 전쟁 발생 직후, 일본은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일본군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일본의 동의 없이 제3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일 의정서를 강요하였다.

 

  • 제1차 한·일 협약(1904년 8월)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였다. 여기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 제2차 영·일 동맹(1905년 8월)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은 후,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

일본이 뤼순항을 함락하고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는 등 전쟁의 승기를 잡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제2조

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이 한국에 대해 정치와 군사 및 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관리, 감독, 보호 조치를 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또한 한국에 있는 러시아 제국 신민은 다른 외국인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러시아는 한국 영토의 안전을 위하여 일본이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동의한다.

 

  • 제2차 한·일 협약(을사늑약, 1905년 11월)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을사늑약으로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 나라 내정 전반에 걸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의 강제 퇴위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순종은 연호를 광무에서 융희로 바꿨다.

 

  •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1907년 7월)

이어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였으며,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실질적으로 한국을 지배하였다.

협약 내용

제1조 한국정부는 시정개선에 관해 통감의 지도를 받는다.

제2조 한국정부는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친다.

제3조 한국의 사법사무는 보통 행정사무와 구별한다.

제4조 한국 고등관리의 임면은 통감의 동의를 얻어 행한다.

제5조 한국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한다.

제6조 한국정부는 통감의 동의없이 외국인을 용빙할 수 없다.

 

  • 기유각서

일본은 1909년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사법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찰권을 빼앗았다.

 

  • 한⋅일 병합 조약(경술국치, 1910년 8월)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통감으로 왔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총독이 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5년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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