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14번 해설 – 고려 무신 정권

문제

14.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가) 왕이 먼저 나라 안의 신하들을 권유하여 개경으로 환도하게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의 명령인데,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임유무가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였다.

(나) 조위총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의방이 이의민을 정동 대장군 지병마사로 임명하였다. 이의민이 군사를 거느리고 전투에 나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눈을 맞았으나, 철령으로 진군하여 사방에서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면서 급습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다) 백관이 최우의 집에 나아가 정년도목(政年都目)을 올렸다. 최우가 청사에 앉아 그것을 받았다. 6품 이하는 당하(堂下)에서 두 번 절하고 땅에 엎드려 감히 고개를 들고 보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최우는 정방을 그의 집에 두고 백관의 인사 행정을 처리하였다.

① (가) – (나) – (다)

② (가) – (다) – (나)

③ (나) – (가) – (다)

④ (나) – (다) – (가)

⑤ (다) – (나) – (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 고려의 대몽 항쟁의 결과,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 1270년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하였다(개경환도).

(나)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켰다.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되었다.

(다) 1225년 최우가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하고,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정답은 ④번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최충헌 –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1225년)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고려
몽골의 침입
13세기 초, 몽골 초원에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금을 공격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려에 왔다가 귀국하던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저고여 피살 사건)이 일어나자, 고려와 몽골의 외교관계는 단절하였다.

 

  • 몽골의 1차 침입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은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건의를 받아 들여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강화 천도), 주민을 산성과 섬으로 피난시킨 뒤 항전과 외교를 병행하면서 저항.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킴

 

  • 몽골의 2차 침입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

 

  • 몽골의 5차 침입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에서 관민을 이끌고 몽골군을 격퇴.

 

  • 피해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

 

  • 개경 환도

몽골과 강화를 맺자는 주화파가 득세하고,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 종결. 1270년, 무신의 마지막 권력자인 임유무가 피살되자 고려 정부는 개경으로 환도

 

  • 삼별초의 항쟁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대몽 항쟁에 앞장섰던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배중손의 지휘 아래 반기를 듦.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여⋅몽 연합군과 전투

삼별초

최우가 야간 경비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가 확대된 것으로 좌별초, 우별초, 그리고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군사들로 조직된 신의군으로 구성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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