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16번 해설 – 고려 경제

문제

16. (가)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이달의 책
1123년 송 사절의 한 사람으로 (가)에 왔던 서긍이 지은 책입니다. 이 책은 서긍이 예성항을 통해 개경으로 들어와 한 달 남짓 머물며 보고 들은 (가)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 것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들은, 그림[圖]은 없어지고 글[經]만 남아 있습니다.

① 솔빈부의 말이 특산품으로 유명하였다.

② 송상이 전국 각지에 송방을 설치하였다.

③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을 운영하였다.

④ 집집마다 부경이라고 불리는 창고가 있었다.

⑤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나타났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도경은 송의 서긍이 고려를 방문하여 지은 책이다.

벽란도는 예성강 하구에 있던 고려 국제 항구였다.

 

① 솔빈부의 말이 특산품으로 유명하였다.

발해 경제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송상이 전국 각지에 송방을 설치하였다.

조선 후기 송상과 같은 사상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을 운영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집집마다 부경이라고 불리는 창고가 있었다.

고구려 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나타났다.

조선 후기 민영 광산 경영이 증가하면서 덕대가 등장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

발해 경제
  • 목축

솔빈부의 말은 주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 무역

발해의 수출품은 주로 모피, 인삼 등 토산물과 불상, 자기 등 수공업품이었다. 수입품은 귀족의 수요품인 비단, 책 등이었다.

거란도, 영주도를 통해 주변국과 교역하였다.

조선 후기
사상의 대두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수공업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의 유통도 활성화되었다. 부세 및 소작료의 금납화, 인구의 자연 증가와 인구의 도시 유입도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을 더욱 촉진하였다.

  • 신해통공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이라고 한다. 이로써 상인들은 보다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공인의 등장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 상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하였다. 공인이 시장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하였으므로 상품 수요가 증가하였다.

 

  • 사상의 등장

처음에는 공인이 상업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 송상

개성의 송상은 전국에 지점을 설치하여 활동 기반을 강화하였는데, 주로 인삼을 재배, 판매하고 대외 무역에도 깊이 관여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 경강상인

경강상인은 운송업에 종사하면서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선박의 건조 등 생산 분야에까지 진출하여 활동 분야를 넓히기도 하였다.

    • 내상

조선 시대 동래부(東萊府, 현재의 부산)에서 일본과 무역을 하였다.

    • 만상

의주에서 활동하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하였다.

 

  • 도고의 등장

일부 공인과 사상은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로 성장하였다.

고구려
사회 모습
  • 진대법 – 고국천왕 때 먹을거리가 모자란 봄에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것으로 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 형사취수제: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사는 혼인 제도이다.
  • 서옥제: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 창고 부경이 있었다.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증가
  • 정부 독점 채굴

광산은 본래 정부가 독점하여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였다.

  • 민영 광산 채굴 허용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점수세제

조선 후기 정부 주도로 설점(設店)하여 광물 채굴을 허가하고 세금을 거둔 제도

 

  • 잠채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 덕대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덕대(德大)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광물을 채굴하여 광산을 경영하는 사람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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