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29번 해설 – 근대 언론 기관

문제

29. (가)~(라)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2점]

개항기 신문 알아보기
– 모둠별로 제시된 신문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올려주세요.
1모둠 2모둠 3모둠 4모둠
한성순보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가) (나) (다) (라)
<보 기>
ㄱ. (가) – 정부에서 발행한 순 한문 신문이었어요.

ㄴ. (나) – 서재필의 주도로 창간되었어요.

ㄷ. (다) – 일장기를 삭제한 손기정 사진이 실렸어요.

ㄹ. (라) – 상업 광고가 처음으로 게재되었어요.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ㄱ. (가) – 정부에서 발행한 순 한문 신문이었어요.

한성순보는 1883년 정부에서 발행한 순 한문 신문이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ㄴ. (나) – 서재필의 주도로 창간되었어요.

독립신문은 1896년 서재필의 주도로 창간되었어요.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ㄷ. (다) – 일장기를 삭제한 손기정 사진이 실렸어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이때 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ㄹ. (라) – 상업 광고가 처음으로 게재되었어요.

상업 광고기 처음으로 게재된 신문은 한성주보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근대 언론 기관의
발달

  • 한성순보

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 한성주보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 독립신문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 황성신문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 제국신문(1898년)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 해조신문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 대한매일신보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 만세보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 신문지법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신문지를 발행하려는 자는 발행지를 관할하는 관찰사를 경유하여 내무대신에게 청원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문지법-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종교
    • 천도교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 대종교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 원불교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 개신교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 불교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조선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 천주교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 문학
    • 1910년대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 1920년대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 1930년대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 예술
    • 음악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애리수, 황성옛터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텅 빈 밤과 서정
윤심덕, 사의 찬미 비극적인 삶으로 빚어낸 염세와 허무
고복수, 타향살이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이들의 짙은 향수
이난영, 목포의 눈물 항구를 배경으로 그리는 이별과 눈물의 정서

 

    • 미술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 연극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토월회는 1923년 5월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박승희·김복진·김기진·이서구·박승목·김을한·이제창 등이 조직하였다.

    • 영화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 기타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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