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18번 해설 – 조선 태종

문제

18. 밑줄 그은 ‘임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① 공신들에게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② 주자소를 두어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③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하였다.

④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⑤ 유자광의 고변을 계기로 남이를 처형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태종은 왕자 시절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적인 정도전을 죽이고 실권을 잡았다.

 

① 공신들에게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주자소를 두어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조선 태종 때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하였다.

고려 충목왕 때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조선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유자광의 고변을 계기로 남이를 처형하였다.

조선 예종 시기유자광의 고변으로 남이가 처형되었다. 이를 남이의 옥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왕자의 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세자 책봉 문제로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제1차 왕자의 난 발생의 원인은 건국에 공이 큰 신의왕후 한씨 소생 왕자들(이방원 등)을 제치고, 계비 강씨의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것에 대한 강한 불만 때문이었다.

태조의 병환을 계기로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여 정도전이 죽임을 당하고 세자로 책봉된 이방석이 폐위되어 살해되었으며, 이방과가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방원은 실권을 잡았다.

조선 태종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하여 개국 공신 세력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 6조 직계제

태종은 도평의사사를 없애고 의정부를 두면서 그 정치적 권한을 약화시키고, 6조 직계제를 채택하였다.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안을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제도)

  • 사간원 독립

언론 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견제하였다.

  • 사병 철폐

사병을 없애 왕이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면서 친위 군사를 늘렸다.

  • 조선 8도

태종 13년에 전국을 8도(道)로 나누었다.

  • 양전 사업

태종은 양전 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다.

  • 호패법

호패법을 실시하여 전국의 인구 동태를 파악하였으며, 이를 조세 징수와 군역부과에 활용하였다.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했다. 거주지와 이름을 적었다.

호패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때에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 계미자

태종 때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계미자를 주조하였다.

  • 신문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하여,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사섬서

사섬서를 설치하여 저화를 발행하였다.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고려
충목왕
  •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조선 명종
  • 을사사화

중종이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시 사림을 등용하기도 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다툼에 윤임이 제거당하고, 사림 세력 역시 정계에서 밀려났다(1545년).

 

    • 정미사화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 을묘왜변

15세기에 비교적 안정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16세기에 이르러 대립이 격화되었다.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이 일어났다.

이에, 조선은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 정세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 을묘왜변

3포를 개항한 이후 왜인들은 약조를 지키지 않고 자주 소란을 피웠다. 특히, 1555년(명종 10)에는 왜인이 70여 척의 배를 몰고 전라남도 연안 지방을 습격해 왔다. 이후 일본과의 교류는 일시 단절되었다.

 

  • 직전법 폐지

1556년 명종 때 직전법이 폐지되어 수조권 지급 제도가 없어졌다.

 

  • 구황촬요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

남이의 옥 조선 예종 시기 남이의 옥. 유자광의 고변으로 남이가 처형되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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