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24. 밑줄 그은 ‘전란’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 초대합니다
창작 뮤지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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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전도에서의 굴욕적인 항복으로 전란은 끝났습니다. 이후 조선의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는 청 섭정왕의 요구로 조선 국왕의 양녀가 되어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 했던 의순 공주 이애숙. 그녀의 굴곡진 삶을 한 편의 뮤지컬로 선보입니다.
• 일시: 2024년 OO월 OO일 OO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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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② 강홍립이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③ 김준룡이 광교산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④ 조헌이 금산에서 의병을 이끌고 활약하였다.
⑤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정묘호란 후 세력을 더욱 확장한 후금은 군신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였고, 국호를 청이라 고친 다음 친명배금을 명분으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왔다(1636년). 이를 병자호란이라 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청군에 대항하고 김준룡이 광교산 전투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주화파인 최명길 등의 주장과 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삼전도의 굴욕).
①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조선 세종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강홍립이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
조선 광해군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김준룡이 광교산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조헌이 금산에서 의병을 이끌고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다.
임진왜란 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조선 인조 |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반란. 이괄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웠으나 2등 공신이 된 것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였다. 마침 조선에서 이괄의 난이 일어나 사회가 혼란해지자, 후금은 광해군을 위하여 보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쳐들어왔다(1627년). 이를 정묘호란이라 한다. 정봉수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맞아 싸웠다. 후금의 군대는 보급로가 끊어지자 강화를 제의하여 화의가 이루어졌다.
세력을 더욱 확장한 후금은 군신 관계를 맺자고 요구하였고, 국호를 청이라 고친 다음 친명배금을 명분으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 왔다(1636년). 이를 병자호란이라 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청군에 대항하고 김준룡이 광교산 전투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주화파인 최명길 등의 주장과 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삼전도의 굴욕). 그 동안 조선에 조공을 바쳐 왔고, 조선에서도 오랑캐로 여겨 왔던 여진족이 세운 나라에 거꾸로 군신 관계를 맺게 되고, 임금이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사실은 조선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인조 때 연분9등법을 따르지 않고 풍년이건 흉년이건 관계 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두로 고정시켰다. 이를 영정법이라 한다(1635년). |
| 조선 전기 일본과의 관계 |
조선은 일본과의 교류에는 교린 정책을 원칙으로 하였다. 사신 접대를 위해 한양에 동평관을 두었다.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에 대한 토벌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이루어졌다. 1419년(세종 1)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왜구의 요구를 받아들여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 등 3포를 개방하여 무역을 허용하고, 계해약조(1443년)를 체결하여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역을 허락하였다.
세종 때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가 왕의 명령에 따라 쓴 견문기이다. |
| 광해군의 중립 외교 |
명에 요청에 따라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파견하였다. 하지만 조⋅명 연합군은 후금군에게 패하였고, 사르후 전투에 참전했던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은 계속되었지만, 광해군은 후금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중립 외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사림은 이를 명에 대한 배신 행위로 간주하였다.
일부 사림은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내세워 광해군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였다. 게다가 광해군과 북인 정권은 왕권의 안정을 이루고자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정치를 펴 도덕적으로 큰 약점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이를 빌미로 서인이 인조반정을 일으킴으로써 광해군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허준, 동의보감 편찬 경기도에 대동법 시행 |
| 임진왜란 |
중종 때의 3포 왜란(1510년), 명종 때의 을묘왜변(1555년) 발생 비변사를 설치하여 군사 문제를 전담하게 하는 등 대책 강구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1592년). 송상현이 동래성에서 항전하였지만 패배.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
전라도 지역에서 이순신이 이끈 수군은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남해안 여러 곳에서 연승을 거두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한산도 대첩에서 거북선 사용
의병은 경상도에서 곽재우가 처음 일으킨 후 김천일, 조헌, 고경명, 정문부, 유정(사명대사), 서산대사 등이 여러 지방에서 왜군과 전투 함경도에서는 정문부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점령된 지역을 수복. 이를 북관대첩이라고 함.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평양성 전투). 권율 장군은 관군, 백성과 함께 합심하여 행주산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 방어(행주 대첩). 진주에서는 김시민이 이끄는 관민이 일본군을 패배시킴(진주 대첩, 제1차 진주성 전투).
류성룡의 건의에 따라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1597년).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명량 해전),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
조선 –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 부족.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 징비록 –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관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 명의 군대 파견 등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 –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명 –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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