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조선 성종

문제

20. 밑줄 그은 ‘전하’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전하께서 성군을 이으셨으니, 예악(禮樂)으로 태평 시절을 일으키실 때가 바로 지금이다. 장악원 소장의 의궤와 악보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 끊어지고 문드러졌다. 다행히 보존된 것 역시 모두 엉성하고 오류가 있으며 빠진 것이 많다. 이에 성현 등에게 명하여 다시 교정하게 하였다. 책이 완성되자 악학궤범이라고 이름 지었다.

① 예악을 정리한 가례집람이 저술되었다.

②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③ 외교 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가 편찬되었다.

④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⑤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조선 성종 때 악학궤범이 편찬되었다.

 

① 예악을 정리한 가례집람이 저술되었다.

조선 선조 시기 김장생이 예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리한 가례집람을 저술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조선 성종 시기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외교 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가 편찬되었다.

조선 정조 시기 외교 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가 편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조선 영조 시기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였다.

조선 선조 시기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조선 전기 음악
  • 세종

세종은 박연에게 악기를 개량하거나 만들게 하였고, 스스로 여민락 등 악곡을 짓고 소리의 장단과 높낮이를 표현할 수 있는 정간보를 창안하였다.

아울러 악곡과 악보를 정리하게 하고 아악을 체계화함으로써 아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하게 하였다.

 

  • 성종

성종 때에 성현은 악학궤범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음악의 원리와 역사, 악기, 무용, 의상 및 소도구까지 망라하여 정리함으로써 전통 음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조선 성종
  • 경국대전 편찬
  • 관수관급제 실시 – 직전법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지방 관청에서 그 해의 생산량을 조사하여 거두고,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바뀜
  • 홍문관 설치 – 집현전 계승
  •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간행
  • 금양잡록 – 금양(시흥) 지방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방의 농사법을 정리하여 금양잡록을 편찬
김장생 조선 선조 때 예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정리한 가례집람을 저술하였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조선 후기
영조의 탕평 정치
  • 이인좌의 난 발생
  • 탕평 정치 실시. 탕평책.

탕평비

  • 탕평비 설치 –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되었다. 탕평책을 펼쳐 붕당의 다툼을 없애려 한 영조의 의지가 담겨 있다.
  • 준천사를 설치하여 청계천을 준설함으로서 청계천의 범람 피해와 하수처리 문제를 해결
  • 산림 존재 불인정
  • 서원 대폭 정리
  • 이조 전랑 권한 약화
  • 균역법 시행
  • ‘속대전’, ‘속오례의’, ‘동국문헌비고’ 편찬
  • 신문고 부활
조선 전기
붕당의 출현
  • 배경

선조가 즉위하면서 그 동안 향촌에서 세력 기반을 다져 오던 사림 세력이 대거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 사림의 분화
    • 척신 정치 잔재의 청산

사림 세력은 척신 정치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게 되었다.

명종 때 이후 정권에 참여해 온 기성 사림은 척신 정치의 과감한 개혁에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명종 때의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새롭게 정계에 등장한 신진 사림은 원칙에 더욱 철저하여 사림 정치의 실현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 이조 전랑 임명 문제

또한 인사권을 가진 이조 전랑의 임명 문제와 공론을 둘러싸고 사림 세력은 갈등을 겪었다.

조선 선조 시기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였다.

이조 전랑

삼사의 관리에 대한 인사를 좌우할 수 있었고, 스스로 자기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인 삼사의 관리들은 언론을 통해 이조 전랑을 지원하였다.

 

  • 동인과 서인

동인은 이황, 조식, 그리고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신진 사림 세력이 참여하여 먼저 붕당의 형세를 이루었다.

반면에, 서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인이 가담함으로써 비로소 붕당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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