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22번 해설 – 조선 통신사

문제

22. (가) 사절단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그림으로 보는 조선 사절단의 여정

『사로승구도』는 1748년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가)이/가 부산에서 에도에 이르는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일본의 명승지나 사행 중 겪은 인상적인 광경을 30장면으로 표현하였는데, 위 그림은 사절단이 에도로 들어갈 때 보았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① 연행사라는 이름으로 보내졌다.

② 암행어사의 형태로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③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참여하였다.

④ 사행을 다녀온 여정을 조천록으로 남겼다.

⑤ 관련 기록물이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① 연행사라는 이름으로 보내졌다.

조선 후기, 조선은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에 정기적으로 연행사를 파견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암행어사의 형태로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국왕의 특명에 따라 비밀리에 파견되어 지방관의 비리·불법을 규찰하고 민생 현안을 점검했던 관리를 말한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참여하였다.

조선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은 이때 보빙사로 미국에 파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사행을 다녀온 여정을 조천록으로 남겼다.

조천록은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의 등극을 중국 명나라 왕실에 알리기 위하여 조선에서 파견한 반정 사실 주청사행의 일원으로 부사를 따라갔던 자가 지은 기행수필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관련 기록물이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2017년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 17세기~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가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⑤번이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관계
  • 일본의 국교 요청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 조선인 포로 송환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임진왜란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4년).

또한 160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포로 송환을 목적으로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 기유약조

조선은 동래부에 다시 왜관을 설치하고,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년).

1678년 부산 초량에 왜관이 건설되었다.

 

  • 통신사 파견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 을릉도와 독도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

지정일 명칭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

1997년 조선왕조실록

사초와 시정기 등을 종합하여 편찬하였다.

2001년 직지심체요절 – 하권

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2001년 승정원일기

○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承政院)에서 왕명의 출납, 각종 행정 사무와 의례(儀禮) 등에 관해 기록한 일기이다.

○ 조선 시대의 시대상을 꼼꼼하게 기록한 1차 사료이며, 3천 2백여 권, 2억 4천여 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로 현존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대 기록물이다.

○ 인조대부터 순종대까지 280여 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자료가 남아 있으며, 인조 이전의 자료는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으로 소실되었다.

2007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2007년 조선왕조 의궤

  • 병인양요 당시 일부가 프랑스군에게 약탈되었다.
2009년 동의보감

  • 허준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의서를 망라하여 집대성하였다.
2011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1년 일성록

  • 1760년(영조 36) 1월부터 1910년(융희 4) 8월까지 조선 후기 151년간의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는 일기체의 연대기이다.
2013년 난중일기
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
2015년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
2017년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 –

17세기~19세기 한일 간 평화구축과 문화교류의 역사

2017년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2017년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2023년 4·19혁명 기록물
2023년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025년 제주 4·3 기록물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수신사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 1차 수신사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 2차 수신사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 3차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 조사 시찰단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 영선사(1881년)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기기창

1883년 한성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이었다.

 

  • 보빙사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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