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15번 해설 – 고려 공민왕

문제

15. 밑줄 그은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A: 그림은 공민왕과 그의 왕비인 노국 대장 공주의 초상화야. 고려에는 노국 대장 공주 외에도 제국 대장 공주, 계국 대장 공주 등 원 출신의 왕비들이 여럿 있었어.

B: 맞아. 충렬왕부터 공민왕에 이르는 시기의 왕들은 원의 공주들과 결혼했어.

① 권문세족이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였다.

②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③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하였다.

④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다.

⑤ 국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교정도감이 설치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의 대몽 항쟁 후 원과 강화를 맺은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았다.

 

① 권문세족이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였다.

고려 원 간섭기의 권문 세족은 친원 세력으로 첨의부나 밀직사 등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고, 도평의사사의 구성원으로서 권력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조선 후기 사회가 변화하면서 유교적 명분론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비기, 도참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은 이때에 널리 유행한 비기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하였다.

고려 목종 시기인 1009년 강조의 정변이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다.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국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교정도감이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 무신 정권 집권자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설치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원 간섭기
사회 변화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음

권문세족 등장 – 원 간섭기에는 친원 세력이 권문세족으로 성장

몽골풍 – 고려 사회에는 몽골풍이 유행하여 변발, 몽골식 복장, 몽골어가 궁중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짐

고려양 – 고려의 의복, 그릇, 음식 등의 풍습이 몽골에 전해졌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일컬음

고려
신분 제도
  • 고려의 신분 제도

고려의 신분 구성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략 귀족과 중류층, 그리고 양민과 천민으로 구성되었다.

 

  • 귀족

귀족 세력은 왕족을 비롯하여 5품 이상의 고위 관료가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음서나 공음전의 혜택을 받는 특권층이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자가 있으면 형벌로 귀향을 시키기도 하였다.

 

  • 문벌 귀족

귀족은 대대로 고위 관직을 차지하여 문벌 귀족을 형성하였으며, 고려 사회를 이끌어 갔다.

중앙 관직에 진출한 집안은 귀족 가문으로 자리잡기 위하여 관직을 바탕으로 토지 소유를 확대하는 등 재산을 모았고, 유력한 가문과 서로 중첩된 혼인 관계를 맺었다. 귀족이 사돈맺기를 가장 원하는 집안은 왕실이었다.

 

  • 무신

귀족층의 변화는 무신정변을 계기로 일어났다. 종래의 문벌 귀족이 약화되면서 무신이 권력을 잡았다.

 

  • 권문세족

무신 정권이 붕괴되면서 등장한 귀족은 권문세족이었다.

이들은 고려 후기에 정계의 요직을 장악하고 대농장을 소유한 최고 권력층이었으며, 가문의 힘을 이용하여 음서로써 신분을 세습시켜 갔다.

권문 세족은 고려 후기의 정치, 경제면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보수적인 사회 세력이었다. 이들은 첨의부나 밀직사 등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고, 도평의사사의 구성원으로서 권력을 장악하였다.

권문세족

종래의 문벌 귀족 가문, 무신 정권기에 새로 등장한 가문, 원과의 관계를 통하여 성장한 가문 등을 말한다.

 

  • 중류층

고려의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는 중류층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지배 기구의 말단 행정직으로 존재하였는데, 지방 행정의 실무를 담당한 향리 등이 있었다.

이들은 직역을 세습적으로 물려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토지를 국가에서 받았다. 하지만 향리가 문반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각 지방의 호족 출신은 향리로 편제되어 갔다. 호족 출신들은 호장, 부호장을 대대로 배출한 지방의 실질적 지배층이었다.

 

  • 호장(戶長)

향리직의 우두머리로 부호장과 함께 해당 고을의 모든 향리가 수행하던 말단 실무 행정을 총괄하였다.

 

  • 양민

양민은 일반 주⋅부⋅군⋅현에 거주하면서 농업이나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농사에 종사하는 농민층이 주류를 이루었다.

양민의 대다수는 농민으로서 이들을 백정(白丁)이라고도 한다.

군인이 군공을 쌓아 무반으로 출세하는 경우도 있었다.

양민이면서 군현민과 구별되는 특수 행정 구역인 향, 부곡, 소에 거주한 주민은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고 있었다.

고려 후기에는 향, 부곡, 소가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 천민

천민의 대다수는 노비였다. 노비는 공공 기관에 속하는 공노비와 개인이나 사원에 예속된 사노비가 있었다.

노비는 재산으로 간주되어 국가에서 엄격히 관리하였다. 매매, 증여, 상속의 방법을 통하여 주인에게 예속되어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귀족은 재산으로 간주된 노비를 늘리기 위하여 부모 중의 한쪽이 노비이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게 하였다(일천즉천).

천민으로는 노비, 화척, 재인(광대), 진척(뱃사공), 역정(마부) 등이 있었다.

 

  • 공노비

입역 노비: 궁중과 중앙 관청이나 지방 관아에서 잡역에 종사하면서 급료를 받고 생활하였다.

외거 노비:  지방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농경을 하여 얻은 수입 중에서 규정된 액수를 관청에 납부하였다.

 

  • 사노비

솔거 노비: 귀족이나 사원에서 직접 부리는 노비로서 주인의 집에 살면서 잡일을 돌보았다.

외거 노비: 주인과 따로 사는 노비로서 주로 농업 등의 일에 종사하고 일정량의 신공을 바쳤다.

또한 외거 노비는 주인의 토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토지도 소작할 수 있어서, 노력에 따라서는 경제적으로 여유를 얻을 수 있었으며, 자신의 토지도 소유할 수 있었다.

외거 노비 중에는 재산을 모아 양인의 신분을 얻는 자도 있었다.

조선 후기
사회 불안의 심화
  • 탐관오리와 각종 재난

탐관오리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 갔다.

또한 재난과 질병이 거듭되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농민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메울 지경이었다.

 

  • 서양의 이양선 등장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서양의 이양선까지 연해에 출몰하자,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

 

  • 도적의 등장

사회 불안이 점점 더해 감에 따라 각처에서는 도적이 크게 일어났다. 화적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나 부상을 공격하였고, 수적은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하였다.

 

  • 예언 사상의 대두

사회가 변화하면서 유교적 명분론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비기, 도참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말세의 도래, 왕조의 교체, 변란의 예고 등 근거없는 낭설이 횡행하여 민심을 혼란시켰다.

여기에 무격 신앙이나 미륵 신앙도 점차 확장되어 갔다. 현세에서 얻지 못하는 행복을 미륵 신앙에서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며, 심지어 살아 있는 미륵불을 자처하면서 서민을 현혹시켜 끌어모으는 무리도 나타났다.

 

    • 정감록

왕조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은 이 때에 널리 유행한 비기였다.

고려
무신정권기
  •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개경 부근의 보현원에서 놀이를 즐길 때를 이용하여 정중부, 이의방 등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킴

문신들을 제거하고 의종을 귀양 보낸 다음 명종을 세워 정권을 장악

무신 간 내분으로 정중부가 피살되고, 경대승, 이의민이 차례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됨.

중방 –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 기구

무신 집권자의 변화: 이의방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충헌

최씨 정권의 성립 – 1196년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정권이 지속됨

최충헌 – 명종 때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

교정도감 – 최씨 정권 최고 권력 기구

최고 집권자는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

도방은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최우

아버지인 최충헌의 뒤를 이어 교정도감을 통하여 정치 권력을 행사,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

서방을 설치하여 유명 문신을 머무르게 하며 정권 운영의 고문을 담당

고려 고종은 최우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

삼별초 설치. 삼별초는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 무신 정권 시기 봉기
    • 김보당의 난

1173년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무신 정권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의종의 복위를 추진했지만 실패하여 처형당했다.

    • 조위총의 난

1174년,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일으킴. 이의민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여 상장군이 됨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저항 운동을 일으킴

    • 만적의 난

1198년, 개경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중심이 되어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 사전 발각 후 실패

강조의 정변 고려 목종 시기인 1009년에 발생한 강조의 정변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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