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한능검 심화 19번 해설 – 집현전

문제

19.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① 은대(銀臺)라고도 불렸다.

② 전문 강좌인 7재를 운영하였다.

③ 고려의 삼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④ 단종 복위 운동을 계기로 세조에 의해 폐지되었다.

⑤ 대사성을 수장으로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을 두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가)에 들어갈 기구는 집현전이다.

조선 세조 시기 집현전이 폐지되었다. 조선 성종 때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이 설치되었다.

 

① 은대(銀臺)라고도 불렸다.

승정원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전문 강좌인 7재를 운영하였다.

고려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고려의 삼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려 시대 삼사는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만 맡았다.

조선 시대 6조 중 호조가 고려의 삼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단종 복위 운동을 계기로 세조에 의해 폐지되었다.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대사성을 수장으로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을 두었다.

성균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조선 세종
  • 집현전 설치

집현전 학사는 학문 연구와 아울러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의 통치를 자문하였다. 이 기능은 뒤에 홍문관으로 이어졌다.

  • 의정부 서사제

6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되는 의정부에서 논의한 다음, 합의된 사항을 국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는 형식이다.

  • 쓰시마섬 정벌

1419년 이종무는,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을 이끌고 쓰시마 섬을 토벌하여 왜구의 근절을 약속받고 돌아왔다.

  • 4군 6진

세종 때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최윤덕이 4군을, 김종서가 6진을 개척했다.

  • 계해약조

3포 개항 이후 세종 25년(1443년)에 계해약조를 맺어 쓰시마 도주에게 세사미두 200석, 세견선 50척으로 허용해 주었다.

  •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여 반포하였다(1446년).

  • 지도·지리지

세종 때 전국 지도로서 팔도도를 만들었고, 지리지의 편찬도 추진되어 신찬팔도지리지가 편찬되었다.

  • 삼강행실도

세종 때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을 붙여 윤리서인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 과학 

천체 관측기구로 혼천의(혼의)와 간의를 제작하고, 시간 측정 기구로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만들어(1441년) 전국 각지의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토지 측량 기구인 인지의와 규형을 제작하여 토지 측량과 지도 제작에 활용하였다.

  • 칠정산

세종 때 만든 칠정산은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로 하여 만든 역법서로, 우리 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 갑인자

세종 때 구리로 갑인자를 주조하였는데, 이는 글자 모습이 아름답고 인쇄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 총편등록

세종 때 화약 무기의 제작과 그 사용법을 정리한 총통등록을 편찬하였다.

  • 농사직설

세종 때 정초 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최초의 농서로서 중국의 농업 기술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하였다.

  • 의학

우리 풍토에 알맞은 약재와 치료 방법을 개발, 정리하여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의방유취라는 의학 백과 사전을 간행하였다.

  • 부민고소금지법

하급 서리나 일반 백성들이 경외의 상급 관리들에 대해 고소를 금지하는 부민고소금지법을 시행하였다.

조선 세조
  •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 6조 직계제 실시 – 강력한 왕권 행사
  • 집현전 폐지
  • 직전법 실시(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
  • 간경도감 설치(불서 간행 목적)
  • 진관 체제 실시
  • 호패법 재실시
  • 이시애의 난 발생
조선
중앙 정치 체제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중앙 관직인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 의정부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었다.

3정승의 합의에 의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 6조

6조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나누어 맡았다.

6조의 판서(장관)들은 행정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에는 의정부의 재상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졌다.

 

  • 3사

3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말한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이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3사의 기능 강화는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3사의 언관

벼슬 등급은 높지 않았으나,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주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중에 판서나 정승 등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 사헌부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또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했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 사간원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왕에게 간언, 논박.

사간원의 수장은 대사간이다.

 

    • 홍문관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 의금부

의금부는 국가의 큰 죄인을 다스렸다.

 

  • 승정원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으로, 왕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이 있었다.

 

  • 한성부

한성부는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했다.

 

  • 춘추관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했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 승무원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고려
교육 기관
  • 관학
    • 국자감(국학)

중앙에는 국립 대학인 국자감(국학)이 설치되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 같은 유학부와 율학, 서학,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

유학부에는 문무관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 관리나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였다.

 

    • 향교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방 관리와 서민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 사학
    • 사학 12도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

      • 문헌공도(文憲公徒)

문종 때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으로, 12도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명성이 높았다. 최충이 사망한 후 그의 시호인 문헌을 이름으로 붙였다.

 

  • 관학 진흥 시책

사학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국자감의 관학 교육은 위축되었다. 이에 정부는 관학 진흥을 위한 여러 시책을 추진하였다.

    • 서적포

숙종 때 국자감을 강화하고자 서적포를 두어 도서 출판을 활발히 하였다.

    • 7재

예종 때에는 국자감을 재정비하여 7재라는 전문 강좌를 설치하고, 양현고라는 장학 재단을 두어 관학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였다. 또, 청연각과 보문각이란 학문 연구소를 두어 유학의 발달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 충선왕

충선왕 때에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공자 사당인 문묘를 새로 건립하여 유교 교육의 진흥에 나섰다.

    • 공민왕

공민왕은 성균관을 순수한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하고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