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번 문제
32. 다음 그림 카드를 활용한 학습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 |
① 비변사의 설치
② 기묘사화의 발생
③ 임술 농민 봉기의 발발
④ 항일 의병 운동의 전개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규모의 의병 부대가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민종식, 최익현 등 양반 출신 의병장을 비롯하여, 평민 출신 의병장인 신돌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익현은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① 비변사의 설치
비변사는 16세기 중종 초에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회의 기구로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기묘사화의 발생
1519년 조선 중종 시기 조광조의 위훈을 삭제 등의 개혁 정치가 공신들의 반발을 불러와 사림 세력이 제거당하는 기묘사화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임술 농민 봉기의 발발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발생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항일 의병 운동의 전개
보기의 내용은 옳다.
정답은 ④번이다.
| 항일 의병 운동 |
명성 황후 시해로 분노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유인석, 이소응, 허위 등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이 주도하였다. 이소응 부대는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유인석 부대는 제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였다.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단발령을 취소하고 의병의 해산을 권유하자, 의병들은 대부분 활동을 중단하였다.
을미의병의 활동 후, 1900년을 즈음하여 해산된 농민들의 일부가 활빈당을 조직하여 반봉건⋅반침략 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활빈당은 양반·부호, 관청, 장시 등을 습격하여 무기와 재물을 약탈하고, 그 중에서 일부를 빈민에게 분배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동학 농민군의 잔여 세력과 행상, 유민, 노동자, 걸인 등으로 조직되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규모의 의병 부대가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다. 민종식, 최익현 등 양반 출신 의병장을 비롯하여, 평민 출신 의병장인 신돌석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익현은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장으로 국내외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있던 안중근은,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표와 회담하기 위하여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그를 사살하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1909년).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였다. 또한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이재명은 명동 성당 앞에서 을사 5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혔다.
고종 황제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민영환은 동포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논설을 실어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였으며, 조약 체결에 앞장선 친일 대신들을 격렬하게 비판하였다.
나철, 오기호 등은 5적 암살단을 조직하여 을사 5적의 집을 불사르고 일진회를 습격하는 등 매국노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908년 전명운, 장인환이 일본의 한국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미국인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하였다.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 운동은 그 규모와 성격면에서 의병 전쟁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 때의 의병을 정미의병이라고 한다.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이 결정되자 시위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였고, 해산된 군인들이 일본군과 서울 시가전을 전개하면서 대일 항전을 개시하였다. 그 뒤 각 지방의 해산 군인들도 잇달아 봉기하였다.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 부대는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무기를 갖추어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정미의병 이후, 각지에서 의병 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서울에서 일본군을 몰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 의병장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을 편성하였다. 이 때, 의병은 서울 주재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의 교전 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발송하여, 스스로 독립군임을 내세웠다. 그 중 300명의 선발대는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으나, 일본군의 선제 공격을 받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던 의병 투쟁은 그 후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을 계기로 크게 위축되었다. 일부 의병 부대는 국권을 빼앗긴 후에 만주나 연해주로 이동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
|||
| 조선 비변사 |
붕당 정치가 전개되면서 정치 구조면에서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고, 3사의 기능이 바뀌는 등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비변사는 16세기 중종 초에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회의 기구로 설치되었다. 명종 시기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관이 되었다. 비변사는 비국 또는 주사로 불렸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구성원이 3정승을 비롯한 고위 관원으로 확대되었고, 그 기능도 군사 문제뿐 아니라 외교, 재정, 사회, 인사 문제 등 거의 모든 정무를 총괄하였다. 이와 같이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자, 의정부와 6조 중심의 행정 체계는 유명무실해졌다. |
|||
| 사림의 성장과 사화 |
향촌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굳히던 사림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에 참여함으로써 훈구 세력을 견제하였다. 김종직과 그 문인이 성종 때에 중앙에 진출하면서 사림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사림은 훈구 세력이 중앙 집권 체제를 강조한 데 비해, 향촌 자치를 내세우며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강조하였다. 또한 사림 세력은 서원과 향약을 통하여 향촌 사회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과거를 통하여 중앙에 진출한 사림 세력은 주로 이조 전랑과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고 훈구 세력의 비리를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였다.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대립으로 사화가 발생하였다.
성종을 이어 즉위한 연산군은 훈구 대신과 사림을 모두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특히, 사림 세력의 분방한 언론 활동을 억제하였다. 무오사화(1498년)는 조선에서 발생한 첫 번째 사화로, 김일손의 사초에 불손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발생했다. 김일손의 사초 가운데 문제가 된 부분은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수록한 일이었는데, <조의제문>은 항우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 즉 의제를 조선 단종에 비유하여 세조의 찬탈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연산군의 전횡이 심해지자, 3사는 연산군에 대한 간쟁의 수위를 높여 갔고, 대신들 또한 연산군의 실정에 대해 논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연산군은 임금을 능멸하는 행위와 폐비 윤씨 사건의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갑자사화를 일으켰다(1504년).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김굉필 등이 처형되었다.
연산군은 이후 언론을 극도로 탄압하고 재정을 낭비하는 등 폭압적인 정치를 단행하다가 결국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1506년). 중종은 사림을 다시 등용하여 유교 정치를 일으키려 하였다. 당시 명망이 높았던 조광조가 중용되면서 천거제의 일종인 현량과를 통하여 사림이 대거 등용되었다. 이들은 3사의 언관직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공론이라 표방하면서 급진적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조광조의 청렴함과 원리 원칙에 충실한 태도는 남곤⋅심정 등으로 대표되는 훈구 재상들과의 대립을 불러왔다. 이들의 위훈을 삭제하면서 대립 양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공신들의 반발로 말미암아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세력은 대부분 제거되었다(1519년).
중종이 훈구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시 사림을 등용하기도 하였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외척끼리의 권력 다툼에 윤임이 제거당하고, 사림 세력 역시 정계에서 밀려났다(1545년).
1547년 조선 명종 2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나 을사사화(1545년)에서 제거되었던 ‘대윤’ 윤임의 남은 관련자들이 제거되었다. 이를 정미사화라고 한다. |
|||
| 임술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은 실패로 끝났으나 그 영향은 의외로 커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아 일어났다.
철종 때에 진주에서 일어난 임술 농민 봉기(1862년)는 삼정의 문란과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임술 농민 봉기는 진주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농민들은 탐관오리와 토호의 탐학에 저항하여 한때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대규모의 농민 봉기에 당황한 세도 정권은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관리들의 비리를 조사하였으며, 안핵사 박규수를 파견하여 주동자를 처벌하도록 하였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개혁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삼정 문란의 원인을 운영상의 문제로만 파악하여 농민 봉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 71회 한능검 기본 1번 해설 – 신석기 시대
- 71회 한능검 기본 2번 해설 – 무천, 책화
- 71회 한능검 기본 3번 해설 – 신라 진흥왕
- 71회 한능검 기본 4번 해설 – 백제 사비 천도
- 71회 한능검 기본 5번 해설 – 금관 가야
- 71회 한능검 기본 6번 해설 – 고구려
- 71회 한능검 기본 7번 해설 – 원종과 애노의 난, 적고적의 난
- 71회 한능검 기본 8번 해설 – 설총
- 71회 한능검 기본 9번 해설 – 발해
- 71회 한능검 기본 10번 해설 – 후삼국 시대
- 71회 한능검 기본 11번 해설 – 고려 광종
- 71회 한능검 기본 12번 해설 – 고려
- 71회 한능검 기본 13번 해설 – 고려 현종
- 71회 한능검 기본 14번 해설 – 배흘림, 주심포 건축
- 71회 한능검 기본 15번 해설 – 망이.망소이의 난
- 71회 한능검 기본 16번 해설 – 고려 여진 관계
- 71회 한능검 기본 17번 해설 – 고려 불교 행사
- 71회 한능검 기본 18번 해설 – 고려 경제 활동
- 71회 한능검 기본 19번 해설 – 조선 태종
- 71회 한능검 기본 20번 해설 – 조선 전기 도자기
- 71회 한능검 21번 기본 해설 – 조선 토지 제도
- 71회 한능검 기본 22번 해설 – 대동법
- 71회 한능검 기본 23번 해설 – 임진왜란
- 71회 한능검 기본 24번 해설 – 조선 정조
- 71회 한능검 기본 25번 해설 – 김홍도
- 71회 한능검 기본 26번 해설 – 신해박해
- 71회 한능검 기본 27번 해설 – 임오군란
- 71회 한능검 기본 28번 해설 – 서얼
- 71회 한능검 기본 29번 해설 – 흥선 대원군
- 71회 한능검 기본 30번 해설 – 김홍집
- 71회 한능검 기본 31번 해설 – 강화도 조약
- 71회 한능검 기본 32번 해설 – 최익현 을사의병
- 71회 한능검 기본 33번 해설 – 동학 농민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34번 해설 – 근대 문물의 수용
- 71회 한능검 기본 35번 해설 – 토지 조사 사업
- 71회 한능검 기본 36번 해설 – 홍범도
- 71회 한능검 기본 37번 해설 – 방정환
- 71회 한능검 기본 38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71회 한능검 기본 39번 해설 – 3.1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40번 해설 – 실력 양성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41번 해설 – 일제 문화 통치
- 71회 한능검 기본 42번 해설 – 이봉창
- 71회 한능검 기본 43번 해설 – 이육사
- 71회 한능검 기본 44번 해설 – 한국 문제 유엔 상정
- 71회 한능검 기본 45번 해설 – 이승만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46번 해설 – 5.18 민주화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47번 해설 – 박정희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48번 해설 – 김영삼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49번 해설 – 노무현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50번 해설 – 대한제국, 제헌 헌법, 대동단결 선언
- 71회 한능검 기본 1번~50번 전체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