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번 문제
37.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 |
① 의열단 창설을 주도함
②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함
③ 어린이날 제정에 기여함
④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됨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소년 운동은 1921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천도교 소년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방정환은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라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22년 천도교 소년회의 방정환과 김기전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① 의열단 창설을 주도함
김원봉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함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어린이날 제정에 기여함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됨
1907년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 소년 운동 |
소년 운동은 1921년 방정환을 중심으로 천도교 소년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방정환은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라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아이에서 어린이로!
1922년 천도교 소년회의 방정환과 김기전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천도교 소년회는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를 발행하였다. |
||||||||
1919년 11월 신흥 무관 학교 출신인 김원봉, 윤세주 등은 만주 지린성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의열단원들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민중 직접 혁명을 달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의열단은 일제의 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5파괴, 7가살)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박재혁 – 1920년 부산경찰서에 폭탄 투척 김익상 – 1921년 조선 총독부에 폭탄 투척 김상옥 – 1923년 종로 경찰서에 폭탄 투척 김지섭 – 1924년 일본 도쿄 궁성 폭탄 투척 나석주 – 1926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 투척
의열단은 1920년대 후반부터 개인 폭력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조직적인 항일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의열단원들은 중국 황푸 군관 학교에 입학하여 정규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30년대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그리고 의열단은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으로 중국 관내 대부분의 민족 운동 단체를 통합한 민족 혁명당 결성(1935년)을 주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국민 대표 회의 이후 침체를 겪었다. 또한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이 나빠지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어려워졌다. 김구는 1931년 임시 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이봉창은 일본 도쿄에서 천황이 타고 가는 마차에 폭탄을 던져 일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중국 상하이를 침략하였다(상하이 사변).
1932년 상하이 사변에서 승리한 일제는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이때 윤봉길이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요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하였다.
한국 애국단의 의거로 인해 중국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크게 호전되었으며,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중국 영토 내에서 한국광복군이 조직되는 토대가 되었다. |
|||||||||
| 일제 강점기 종교 문학 예술 |
천도교의 지도자들은 3⋅1 운동을 주도한 후 제2의 독립 선언 운동을 계획하였다.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민족 계몽에 노력하였다.
단군 신앙을 내세운 민족 종교인 대종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권이 침탈된 직후부터 만주로 이동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광단과 북로 군정서를 결성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다.
박중빈은 원불교를 창시하고, 개간 사업과 저축 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 자립 정신을 키워 갔으며, 남녀 평등, 허례 허식의 폐지 등 새생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개신교는 국권 피탈 이후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족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여 그 지도자들의 일부가 체포, 투옥되기도 하였다.
불교에서는 일제가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목적으로 제정한 사찰령을 폐지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용운은 조선 불교 유신론을 주장하여 민족 불교로서의 전통을 이어 갔다.
천주교는 민중 계몽 운동에 주력하였으며, 일부 신자는 만주에서 무장 항일 운동 단체인 의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는 최남선과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그의 소설 무정이 계몽기의 신문학을 총결산할 만한 작품이라 평가될 정도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3⋅1 운동 이후, 문학계에는 그 이전까지의 계몽주의적 성격과는 다른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고, 이 때 일부 작가들은 동인지를 간행하였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동인지는 창조, 백조, 폐허였다. 그리고 이 즈음에 개벽, 조선지광 등의 잡지가 출간되어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아져 문학 활동이 왕성해졌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의 영향 아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계급 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경향파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식민지 현실과 계급 모순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카프(KAPF, 조선플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자주 독립의 신념을 북돋워 주었다.
1930년대 이후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을 극렬히 드러내는 저항 문학이 등장하였다. 이육사의 <광야>, <절정>, 심훈의 <그날이 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서시>, <쉽게 쓰여진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대표적이다.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이육사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음악계에서는 홍난파와 현제명 등의 작품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국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 합창을 넣은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현하였다.
미술에서는 이중섭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졌다.
3·1 운동 이후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토월회는 1923년 5월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박승희·김복진·김기진·이서구·박승목·김을한·이제창 등이 조직하였다.
영화계에서는 나운규가 강렬한 민족 의식을 반영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아리랑(1926)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은 1922년 12월에 여의도 상공에서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국 방문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개국을 하여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였다. 동아일보에 일장기가 삭제된 사진이 실렸다.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경성 축구단과 평양 축구단이 장소를 번갈아 가면서 경평 축구 대회를 벌였다. |
||||||||
| 일제의 국권 피탈 |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 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1902년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제1차 영·일 동맹을 체결했다.
이후, 1903년 러시아가 압록강에 위치한 용암포를 강제로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자 대한 제국은 ‘전시 국외 중립’을 선언하였다.
인천항과 뤼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을 기습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러·일 전쟁 발생 직후, 일본은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일본군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일본의 동의 없이 제3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일 의정서를 강요하였다. 이때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하였다.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전세가 유리해지자 일제는 한국 식민지화 방안을 확정하고, 이어서 제1차 한⋅일 협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그들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일본은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미국인 스티븐스를 파견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한국의 재정과 외교에 본격적으로 간섭하였다.
러·일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였다. 여기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 동맹을 맺은 후, 한반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승인받았다.
일본이 뤼순항을 함락하고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는 등 전쟁의 승기를 잡자,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였다. 을사늑약으로 일제는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 나라 내정 전반에 걸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초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제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이상설, 이준, 이위종)를 파견하자,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순종은 연호를 광무에서 융희로 바꿨다.
이어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였으며,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실질적으로 한국을 지배하였다.
일본은 1909년 기유각서를 체결하여 사법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찰권을 빼앗았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통감으로 왔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총독이 되었다. |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 71회 한능검 기본 1번 해설 – 신석기 시대
- 71회 한능검 기본 2번 해설 – 무천, 책화
- 71회 한능검 기본 3번 해설 – 신라 진흥왕
- 71회 한능검 기본 4번 해설 – 백제 사비 천도
- 71회 한능검 기본 5번 해설 – 금관 가야
- 71회 한능검 기본 6번 해설 – 고구려
- 71회 한능검 기본 7번 해설 – 원종과 애노의 난, 적고적의 난
- 71회 한능검 기본 8번 해설 – 설총
- 71회 한능검 기본 9번 해설 – 발해
- 71회 한능검 기본 10번 해설 – 후삼국 시대
- 71회 한능검 기본 11번 해설 – 고려 광종
- 71회 한능검 기본 12번 해설 – 고려
- 71회 한능검 기본 13번 해설 – 고려 현종
- 71회 한능검 기본 14번 해설 – 배흘림, 주심포 건축
- 71회 한능검 기본 15번 해설 – 망이.망소이의 난
- 71회 한능검 기본 16번 해설 – 고려 여진 관계
- 71회 한능검 기본 17번 해설 – 고려 불교 행사
- 71회 한능검 기본 18번 해설 – 고려 경제 활동
- 71회 한능검 기본 19번 해설 – 조선 태종
- 71회 한능검 기본 20번 해설 – 조선 전기 도자기
- 71회 한능검 21번 기본 해설 – 조선 토지 제도
- 71회 한능검 기본 22번 해설 – 대동법
- 71회 한능검 기본 23번 해설 – 임진왜란
- 71회 한능검 기본 24번 해설 – 조선 정조
- 71회 한능검 기본 25번 해설 – 김홍도
- 71회 한능검 기본 26번 해설 – 신해박해
- 71회 한능검 기본 27번 해설 – 임오군란
- 71회 한능검 기본 28번 해설 – 서얼
- 71회 한능검 기본 29번 해설 – 흥선 대원군
- 71회 한능검 기본 30번 해설 – 김홍집
- 71회 한능검 기본 31번 해설 – 강화도 조약
- 71회 한능검 기본 32번 해설 – 최익현 을사의병
- 71회 한능검 기본 33번 해설 – 동학 농민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34번 해설 – 근대 문물의 수용
- 71회 한능검 기본 35번 해설 – 토지 조사 사업
- 71회 한능검 기본 36번 해설 – 홍범도
- 71회 한능검 기본 37번 해설 – 방정환
- 71회 한능검 기본 38번 해설 – 일제 민족 말살 통치
- 71회 한능검 기본 39번 해설 – 3.1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40번 해설 – 실력 양성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41번 해설 – 일제 문화 통치
- 71회 한능검 기본 42번 해설 – 이봉창
- 71회 한능검 기본 43번 해설 – 이육사
- 71회 한능검 기본 44번 해설 – 한국 문제 유엔 상정
- 71회 한능검 기본 45번 해설 – 이승만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46번 해설 – 5.18 민주화 운동
- 71회 한능검 기본 47번 해설 – 박정희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48번 해설 – 김영삼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49번 해설 – 노무현 정부
- 71회 한능검 기본 50번 해설 – 대한제국, 제헌 헌법, 대동단결 선언
- 71회 한능검 기본 1번~50번 전체 해설
한국사 시험 모음
- 연표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심화 1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3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2점 문제
-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기본 1점 문제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고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중급
- (구)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능검) 초급
- 한국사 공무원 시험
- 한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연표
- 선사 ~ 고조선 역사 연표
- 삼국 시대 역사 연표
- 통일 신라 발해 남북국 시대 역사 연표
- 후삼국·고려 시대 역사 연표
- 조선 전기 역사 연표
- 조선 후기 역사 연표
- 근대 개항 및 국권 피탈 역사 연표
- 일제 강점기 역사 연표
- 현대사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