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한능검 기본 7번 해설 – 원종과 애노의 난, 적고적의 난

7번 문제

7. 다음 자료를 활용한 탐구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 주와 군에서 세금을 바치지 않아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 왕이 관리를 보내 독촉하니 곳곳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때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 도적들이 나라의 서남쪽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붉은색 바지를 입어 모습을 다르게 하였으므로 적고적이라고 불렸다. 여러 고을을 공격하여 해를 입혔다.

① 백제의 불교 수용

② 신라 말의 사회 동요

③ 고구려 부흥 운동의 전개

④ 삼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① 백제의 불교 수용

384년 백제 침류왕 때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수용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신라 말의 사회 동요

통일 신라 말 지방에서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적고적의 난 등이 일어났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고구려 부흥 운동의 전개

고구려가 멸망한 후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받든 검모잠과 고연무 등은 고구려의 유민을 모아 부흥 운동을 전개했다.

검모잠은 한성, 고연무는 오골성을 근거지로 삼았다.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삼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

7세기 초에 고구려의 담징은 종이와 먹의 제조 방법을 전하였고, 호류 사의 벽화를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일본 나라 시에서 발견된 다카마쓰 고분 벽화가 고구려 수산리 벽화 고분과 흡사한 점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백제는 4세기에 아직기는 일본의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뒤이어 일본에 건너간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고 가르쳤다. 6세기에는 노리사치계가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4세기 후반 백제는 칠지도를 만들어서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통일 신라 말
정치 변동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

무열왕계 왕실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 김헌창의 난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과 그 아들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 장보고의 난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가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장보고는 신무왕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귀족의 견제를 받아 살해당하였다.

 

  •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 적고적의 난

지방에서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삼국
불교 수용
삼국은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과 지방 세력의 통합에 힘쓰던 4세기에 불교를 수용하였다.

이는 새로운 국가 정신의 확립에 기여하고 강화된 왕권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사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삼국 시대 불교는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비는 호국 불교의 성격을 띠었다.

 

  • 고구려

중국의 전진을 통하여 소수림왕 때 불교를 수용하였다.

 

  • 백제

침류왕 때 동진에서 불교를 수용하였다.

 

  • 신라

신라는 고구려를 통하여 불교가 전래되었고, 불교 수용 과정에서 귀족들의 반발을 겪다가 6세기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법흥왕 때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되었다.

신라의 여러 왕이 불교식 이름을 가졌으며, 원광은 젊은이들에게 세속 5계를 가르쳤다.

백제, 고구려
부흥 운동
  • 백제 부흥 운동

복신과 흑치상지, 도침 등은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

복신과 도침은 주류성,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거점으로 군사를 일으킴

200여 성을 회복하고 사비성과 웅진성의 당군을 공격하면서 4년간 저항하였으나,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부흥 운동은 좌절

663년, 왜의 수군이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백강 입구까지 왔으나 패배

 

  • 고구려 부흥 운동

보장왕의 서자 안승을 받든 검모잠과 고연무 등은 고구려의 유민을 모아 부흥 운동을 전개

검모잠은 한성, 고연무는 오골성을 근거지로 삼음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

삼국 문화의
일본 전파
  • 고구려

고구려는 일본 고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7세기 초에 고구려의 담징은 종이와 먹의 제조 방법을 전하였고, 호류 사의 벽화를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일본 나라 시에서 발견된 다카마쓰 고분 벽화가 고구려 수산리 벽화 고분과 흡사한 점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 수산리 고분

일본 다카마쓰 고분

 

  • 백제

백제는 삼국 문화의 일본 전수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4세기에 아직기는 일본의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뒤이어 일본에 건너간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고 가르쳤다. 6세기에는 노리사치계가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4세기 후반 백제는 칠지도를 만들어서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칠지도

 

  • 가야

가야 토기는 일본 지역에 전해져 스에키 토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

일본

일본 목조 미륵보살 반가상

일본 스에키 토기

일본 호류사 5층 목탑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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