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한능검 기본 41번 해설 – 일제 문화 통치

41번 문제

41. 다음 기사가 보도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① 장용영에서 훈련하는 군인

② 군국기무처에서 회의하는 관리

③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는 총독부 직원

④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는 민족 운동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① 장용영에서 훈련하는 군인

조선 정조 때 친위 부대인 장용영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군국기무처에서 회의하는 관리

제1차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하는 총독부 직원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공업이 더욱 발달하고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심각한 식량 문제에 부딪혔다.

이에 일제는 192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여 그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④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는 민족 운동가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③번이다.

 

일제의
문화 통치

  • 1920년 ~ 1936년

 

  • 배경

우리 민족의 거족적인 3⋅1 운동과 그로 인하여 악화된 국제 여론에 직면한 일제는 식민 통치 정책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일제의 문화 통치는 친일파를 길러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시키려는 정책으로서, 우리 민족의 단결을 억제하고 독립 운동을 막으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 문화 통치의 실상
    • 문관 총독 임명

일제는 지금까지 현역 군인으로 조선 총독을 임명, 파견하던 것을 고쳐 문관도 그 자리에 임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일제가 축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문관 총독도 임명되지 않았다.

 

    • 보통 경찰 제도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와 장비, 그리고 그 유지비는 3⋅1 운동 이전보다 크게 증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 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시켰다.

 

    • 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우리 민족의 신문 발행이 허가되었다.

하지만 일제는 언론에 대해서 검열을 강화하여 자신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기사는 마음대로 삭제하였고, 더 나아가 신문의 정간을 다반사로 하였으며, 폐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 교육

일제는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을 통해 보통 학교의 교육 연한을 4년에서 6년, 고등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5년으로 연장하였다.

또한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 수는 여전히 부족했고, 조선인의 취학률이 일본인보다 낮았다.

 

    • 부·면 합의회, 도 평의회

일제는 지방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부 면 합의회를 민선으로 구성하고 도 평의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 기구일 뿐이었고, 일본인이나 친일 인사로 구성되었다.

 

  • 치안 유지법(1925년)

일제는 치안 유지법을 제정하여 항일 민족 운동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여 많은 한국인을 구속하였다.

 

  • 자치론의 등장

문화 통치에 동조한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며 민족 운족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조선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 탕평 정치 시행
  • 초계문신제 실시 –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
  • 규장각 설치 – 규장각은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구. 서얼 출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장용영 설치 –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
  • 수원 화성 건설
  • 신해통공 실시 –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 허락
  •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책 편찬
  • 중국에서 <고금도서집성> 수입
제1차
갑오개혁
제1차 동학 농민 봉기 후,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조선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하고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통해 경제적 이권 탈취와 함께 침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내정 개혁을 요청하였으나, 조선은 일본군이 먼저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일본은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년). 그리고 일본은 친일 내각을 수립하여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했다.

교정청

조선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주로 조세 개혁을 결정하였다.

  • 제1차 갑오개혁

일본은 흥선 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 내각을 수립했다.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제1차 갑오개혁, 1894년 7월).

일본은 청⋅일 전쟁 중이라 조선에 내정 간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적인 개혁이 가능했다.

군국기무처

입법권을 가진 초정부적인 개혁 추진 기구이다

  • 주요 개혁 내용
    • 정치
      • 개국 기원 사용
      • 기존 6조에서 8아문으로 개편
      • 궁내부를 신설하여 왕실 사무와 행정 사무 분리
      • 과거제 폐지
    • 경제
      • 탁지아문으로 재정의 일원화
      • 조세의 금납화
      • 도량형의 개정 통일
      • 은본위 화폐 제도를 채택
    • 사회
      • 공·사노비 제도를 혁파하고 신분제 폐지
      • 과부의 재혼 허용
      • 조혼 금지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 배경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공업이 더욱 발달하고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심각한 식량 문제에 부딪혔다.

이에 일제는 192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하여 그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 내용

일제는 다수확 품종으로 벼 종자를 개량하고 비료 사용을 확대하였으며, 농토를 개간하고 밭을 논으로 바꾸었다.

또한 저수지나 제방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에 수리 조합을 조직하였다.

 

  • 결과
    • 증산량 보다 많은 수탈량

일제는 쌀이 목표대로 증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에 따라 우리 농민은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기아 선상에 허덕이게 되었다.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생산되는 값싼 잡곡으로 충당하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였다.

 

    • 식민지 지주제 강화

일본인과 조선인 대지주들은 토지를 집적함으로써 식민지 지주제가 강화했다.

 

    • 농민의 어려움

당시 우리 농민은 수리 조합비, 증산에 투입된 운반비 등도 부담함으로써 이중의 고통을 받았고, 생계는 더욱 어려워져 갔다.

더욱 가난해진 많은 농민들이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거나,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만주 지역 등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

 

    • 쌀 중심의 단작 농업

산미 증식 계획으로 인해 쌀 가격 변동에 취약한 쌀농사 위주의 단작 농업이 정착되었다.

광복 직후
국내 정세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즉각 여운형, 안재홍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 동맹은 좌우 세력을 연합하여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를 조직하였다.

건준은 전국에 지부와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또한 건준은 미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 조직을 정부 형태로 개편하고 각 지부도 인민 위원회로 바꾸어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1945년 그 해에 해산하였다.

 

  • 기타 정당 활동
    • 한국 민주당

1945년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 민주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미 군정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귀국하여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 한국 독립당

김구는 귀국 후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 국민당

1945년 안재홍은 국민당을 조직하였다.

 

    • 조선 인민당

조선 인민당은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당이다.

 

    • 남조선 노동당

1946년 박헌영은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을 조직하였다.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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