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한능검 심화 10번 해설 – 고려 화폐

10번 문제

10.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1점]

왕이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국가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전화(錢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서북의 양조(兩朝)에서는 이를 행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우리나라는 홀로 아직 행하지 않고 있다. 이제 처음으로 화폐를 주조하는 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주조한 동전 15,000관(貫)을 재추(宰樞)와 문무 양반 및 군인에게 나누어 하사하여 화폐 사용의 시작점으로 삼고자 한다. 전문(錢文)은 해동통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① 송상이 전국 각지에 송방을 두었다.

②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다.

③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④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⑤ 설점수세제의 시행으로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고려 숙종 때 해동통보가 발행되었다.

 

① 송상이 전국 각지에 송방을 두었다.

조선 후기 사상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사상 중 하나인 송상은 전국 각지에 송방을 두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다.

조선 후기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신라 지증왕 때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고려 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설점수세제의 시행으로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고려 경제 활동 고려 말, 논농사는 직파법 대신에 이앙법(모내기)이 남부 지방 일부에 보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고려 후기, 이암이 중국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소개

문익점은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 재배가 이루어짐

개경에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

소금 전매제 시행

개경,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대도시에 주점, 다점 등 관영 상점을 둠

성종 때 건원중보, 숙종 때 삼한통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등 동전과 활구(은병)라는 은전을 만듦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활구(은병)

 

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조선 후기
사상의 대두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수공업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상품의 유통도 활성화되었다. 부세 및 소작료의 금납화, 인구의 자연 증가와 인구의 도시 유입도 상품 화폐 경제의 진전을 더욱 촉진하였다.

  • 신해통공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도성 안에서 시전 상인이 아닌 난전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이라고 한다. 이로써 상인들은 보다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공인의 등장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 상인이 나타났다. 이들은 관청에서 공가를 미리 받아 필요한 물품을 사서 납부하였다. 공인이 시장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하였으므로 상품 수요가 증가하였다.

 

  • 사상의 등장

처음에는 공인이 상업 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사상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사상의 활동은 주로 칠패, 송파 등 도성 주변에서 이루어졌지만, 개성, 평양, 의주, 동래 등 지방 도시에서도 활발하였다. 그들은 각 지방의 장시를 연결하면서 물품을 교역하고, 각지에 지점을 두어 상권을 확장하였다.

    • 송상

개성의 송상은 전국에 지점을 설치하여 활동 기반을 강화하였는데, 주로 인삼을 재배, 판매하고 대외 무역에도 깊이 관여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 경강상인

경강상인은 운송업에 종사하면서 거상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주로 서남 연해안을 오가며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선박의 건조 등 생산 분야에까지 진출하여 활동 분야를 넓히기도 하였다.

    • 내상

조선 시대 동래부(東萊府, 현재의 부산)에서 일본과 무역을 하였다.

    • 만상

의주에서 활동하던 만상은 대중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하였다.

 

  • 도고의 등장

일부 공인과 사상은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로 성장하였다.

조선 후기
농민 경제 변화
조선 후기 고구마와 감자가 전래되어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을 확대하여 벼와 보리의 이모작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증가

광작 – 모내기법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일손을 덜 수 있게 되자, 농민은 경작지의 규모를 확대

상품 작물 재배 – 쌀, 목화, 채소, 담배, 인삼 등을 재배하여 판매

수확량의 반(타조법)을 내던 소작료도 일정 액수(도조법)를 곡물이나 화폐로 내도록 하는 변화가 나타남

타조법: 일정 비율로 소작료를 내는 방식. 도조법: 일정 액수를 소작료로 내는 방식

신라
지증왕
  • 국호를 신라로 바꿈
  • 왕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침
  • 512년, 이사부에 명하여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킴
  • 소를 경작에 이용하는 우경을 실시
  • 시장 중 하나인 동시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전을 설치
  • 순장을 폐지
조선 후기
민영 광산의 증가
  • 정부 독점 채굴

광산은 본래 정부가 독점하여 필요한 광물을 채굴하였다.

  • 민영 광산 채굴 허용

정부는 17세기 중엽부터 설점수세제를 시행하여 민간인에게 광산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에 의한 광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설점수세제

조선 후기 정부 주도로 설점(設店)하여 광물 채굴을 허가하고 세금을 거둔 제도

 

  • 잠채

광산의 개발은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합법적인 경우가 있었지만, 몰래 채굴하는 잠채도 성행하였다.

 

  • 덕대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은 경영 전문가인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와 채굴 노동자, 제련 노동자 등을 고용하여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작업 과정은 분업에 토대를 둔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덕대(德大)

광산의 주인과 계약을 맺고 광물을 채굴하여 광산을 경영하는 사람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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