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한능검 심화 20번 해설 – 비변사

20번 문제

20.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이것은 비국 또는 주사라고 불린 (가) 관원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입니다. 이 그림은 (가)이/가 상설 기관으로 자리잡기 이전, 변방의 국방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대비하기 위한 임시 기구이던 시기에 그려졌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관원들의 결의와 충절이 담긴 시가 쓰여 있습니다.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②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혁파되었다.

③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등을 다루었다.

④ 5품 이하의 관리 임명에 대한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⑤ 도승지를 수장으로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을 두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비변사는 16세기 중종 초에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회의 기구로 설치되었다.

비변사는 명종 시기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관이 되었다.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한성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혁파되었다.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기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③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등을 다루었다.

의금부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5품 이하의 관리 임명에 대한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조선은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5품 이하 관리의 등용에는 서경을 거치도록 하였다.

서경은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심사하여 동의해 주는 절차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도승지를 수장으로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을 두었다.

승정원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②번이다.

 

조선
비변사
  • 배경

붕당 정치가 전개되면서 정치 구조면에서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고, 3사의 기능이 바뀌는 등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 비변사의 설치

비변사는 16세기 중종 초에 삼포왜란을 계기로 임시 회의 기구로 설치되었다.

명종 시기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관이 되었다.

비변사는 비국 또는 주사로 불렸다.

 

  • 비변사의 기능 강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구성원이 3정승을 비롯한 고위 관원으로 확대되었고, 그 기능도 군사 문제뿐 아니라 외교, 재정, 사회, 인사 문제 등 거의 모든 정무를 총괄하였다.

이와 같이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되자, 의정부와 6조 중심의 행정 체계는 유명무실해졌다.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 안동 김씨 축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 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 비변사 기능 축소·폐지

세도 정권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축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 의정부와 삼군부 부활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켜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 <대전회통>, <육전조례> 편찬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다.

 

  • 경복궁 중건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중건하였다.

 

  • 원납전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거두었다.

 

  • 당백전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당백전을 발행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기도 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당백전

 

  • 서원 철폐

흥선 대원군은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였다. 이에 지방 유생들과 양반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만동묘가 이때 철폐되었다.

 

  • 호포제

군역 면제 대상인 양반을 포함하여 모든 가구에 군포를 동등하게 부과하게 하였다.

 

  • 사창제

환곡을 개혁하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조선
중앙 정치 체제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되었다.

관리는 문반과 무반의 양반으로 구성되었고, 30등급(18품 30계)으로 나뉘었다.

조선의 중앙 관직인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인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 의정부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었다.

3정승의 합의에 의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였다.

 

  • 6조

6조는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었다.

6조는 국가의 행정을 나누어 맡았다.

6조의 판서(장관)들은 행정만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에는 의정부의 재상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로 이루어졌다.

 

  • 3사

3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말한다.

3사의 언론은 고관은 물론이고 왕이라도 함부로 막을 수 없었고, 이를 위한 여러 규정이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3사의 기능 강화는 권력의 독점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정치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3사의 언관

벼슬 등급은 높지 않았으나,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주로 임명되었다.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중에 판서나 정승 등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 사헌부

사헌부는 관리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았다. 또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 등을 관장했다.

사헌부의 수장은 대사헌이다. 집의, 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

‘상대’는 사헌부의 별칭이다.

 

    • 사간원

사간원은 왕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왕에게 간언, 논박.

사간원의 수장은 대사간이다.

 

    • 홍문관

홍문관은 왕의 정치 자문과 왕과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을 토론하는 경연을 담당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당’이라고 불렀다.

 

  • 의금부

의금부는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국가의 큰 죄인을 다스렸다.

 

  • 승정원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비서 기관으로, 왕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도승지를 수장으로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을 두었다.

은대(銀臺)라는 별칭이 있었다.

 

  • 한성부

한성부는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했다.

 

  • 춘추관

춘추관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했다.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하였다.

 

  • 승무원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성균관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이었다.

주요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던 명륜당 등이 있다.

대사성, 좨주, 직강 등의 관직이 있었다.

조선
관리 등용 제도
조선 시대의 관리는 주로 과거와 음서, 천거를 통하여 선발되었다.

 

  • 과거
    • 응시 자격

천인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제한이 없었으나, 문과의 경우 탐관오리의 아들, 재가한 여자의 아들과 손자, 서얼에게는 응시를 제한하였다.

 

    • 종류

과거에는 문관을 뽑는 문과와 무관을 뽑는 무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가 있었다.

문과에는 양반의 자제가 주로 응시하고, 무과에는 양반, 향리 및 상민의 자제가, 그리고 잡과에는 중인이 많이 응시하였다.

 

      • 문과

문과에는 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시험인 식년시와 부정기 시험인 증광시, 알성시 등이 있었다.

 

        • 정기 시험 식년시

문과는 식년시의 경우에는 초시에서 각 도의 인구 비례로 뽑고, 2차 시험인 복시에서 33명을 선발한 다음, 왕 앞에서 실시하는 전시에서 순위를 결정하였다.

 

        • 문과 응시 자격

문과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이나 진사가 되어야 했으나, 후에는 큰 제한이 없었다.

소과 합격자는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하급 관리가 되기도 하였다.

 

        • 소과

문과의 예비 시험인 생원시, 진사시를 말한다.

 

      • 무과

무과도 문과와 같은 절차를 거쳐 치러지는데, 최종 선발 인원은 28명이었다.

 

      • 잡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도 3년마다 치러지는데, 분야별로 정원이 있었다.

 

  • 천거

또, 과거를 거치지 않더라도 고관의 추천을 받아 간단한 시험을 치른 후 관직에 등용되거나 음서를 통하여 벼슬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거는 대개 기존의 관리를 대상으로 하였고,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 천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 음서

음서의 혜택을 받는 대상도 고려 시대에 비하여 크게 줄어들었고, 음서 출신은 문과에 합격하지 않으면 고관으로 승진하기도 어려웠다.

 

  • 상피제

조선은 권력의 집중과 부정을 막기 위하여 상피제를 마련하였다.

상피제(相避制)

가까운 친인척과 같은 관서에 근무하지 않도록 하거나 출신 지역의 지방관으로 임명하지 않는 제도이다.

 

  • 서경

조선은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5품 이하 관리의 등용에는 서경을 거치도록 하였다.

서경

관리를 처음 임명할 때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심사하여 동의해 주는 절차.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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