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한능검 심화 12번 해설 – 궁예

12번 문제

12.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북원의 도적 우두머리인 양길은 (가)이/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미워하여 국원 등 10여 곳의 성주들과 그를 칠 것을 모의하고 비뇌성 아래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양길의 병사는 패배하여 흩어져 달아났다.

– 『삼국사기』 –

[태조가]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로부터 광주(光州) 부근에 이르러 금성군을 쳐서 함락하고 10여 군현을 공격하여 차지하였다. 이에 금성군을 고쳐서 나주라 하고 군사를 나누어서 지키게 한 뒤 돌아왔다. …… (가)이/가 변경의 일을 물었는데, 태조가 변방을 안정시키고 경계를 넓힐 전략을 보고하였다. 좌우의 신하가 모두 [태조를] 주목하게 되었다.

– 『고려사』 –

①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군대를 물리쳤다.

② 9산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을 개창하였다.

③ 문무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④ 광평성을 비롯한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위 자료의 (가)에 들어갈 인물은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이다.

 

①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군대를 물리쳤다.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② 9산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을 개창하였다.

통일 신라 말 실천 수행을 통하여 마음 속에 내재된 깨달음을 얻는다는 선종 불교가 널리 확산되었다.

선종은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9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문무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통일 신라 신문왕에 대한 내용이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광평성을 비롯한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궁예는 후고구려를 건국한 후 광평성을 비롯한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고려 태조는 후삼국 통일 후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④번이다.

 

후삼국 성립
  • 900년,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움
  • 후백제는 중국 후당, 오월과 외교 관계
  • 901년,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처음에는 북원(원주)에서 양길의 밑에서 시작해 세력이 커지자,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움
  • 후고구려는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김
  • 궁예는 최고 정치 기구인 광평성 등을 마련
  •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고 칭함
  • 궁예는 무태, 성책 등의 독자적 연호를 사용
  • 궁예는 지나친 수취와 전제 정치로 인해 왕건 등에 의해 축출됨
후삼국 통일
  •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금성(나주)을 점령하여 광평성 시중의 지위에까지 오름
  • 918년, 태조 왕건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워 국호를 고려라 하고, 자신의 세력 근거지였던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 태조 왕건은 이들을 우대하여 민족의 완전한 통합을 꾀함.
  • 927년,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를 공산에서 대패시킴(공산 전투). 고려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함.
  • 930년,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가 고려에 대패 당함
  • 935년, 통일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태조 왕건,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935년, 후백제 내분으로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견훤이 고려에 귀순.
  • 936년, 후백제의 신검이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에 대패당함. 후백제 멸망, 고려 후삼국 통일
고려 태조
  • 흑창

빈민을 구제하고 위한 기구로 흑창 설치(춘궁기에 곡식을 나눠 주고 추수 후에 갚게 했던 빈민 구제 기구)

  • 사성 정책

태조는 지방 호족을 회유하기 위해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 정책 실시

  • 사심관 제도

건국 공신들을 사심에 임명하여, 각 자기 출신 지역의 부호장 이하의 임명을 맡게 하는 제도

  • 기인 제도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인질로 삼고, 출신지의 일에 대하여 자문을 맡게 하는 제도

  • <정계>와 <계백료서>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가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

  • 훈요 10조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

  • 북진 정책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

  • 역분전 지급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게 공훈에 대한 대가로 준 논공행상적 성격의 토지

  • 천수라는 연호 사용

 

  • 만부교 사건

고려 태조는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무도한 나라라고 하여 그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하고 낙타는 모두 만부교 아래에서 굶겨 죽였다.

통일 신라 말
선종과 풍수지리설
  • 선종

선종은 교리보다는 각 개인의 마음 속에 있는 불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참선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였다.

    • 실천 수행

신라 말에는 실천 수행을 통하여 마음 속에 내재된 깨달음을 얻는다는 선종 불교가 널리 확산되었다.

    • 지방 호족과 결합

선종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지방 호족의 이념적 지주가 되었다.

    • 9산 선문

선종은 지방 호족과 결합하여 각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하였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9개의 선종 사원이 9산 선문이다.

    • 사회 변혁 사상 토대

선종 승려는 사회 변혁을 희망하던 6두품 지식인과 함께 새로운 고려 사회 건설에 사상적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 풍수지리설
    • 도선

신라 말기에 도선과 같은 선종 승려들은 중국에서 유행한 풍수지리설을 들여왔다.

    • 국토 효율 이용 자각 계기

풍수지리설은 산세와 수세를 살펴 도읍, 주택, 묘지 등을 선정하는 인문 지리적 학설로서,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관련되어 있다.

이에 따라, 경주 중심의 지리 개념에서 벗어나 다른 지방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신라
신문왕
  • 김흠돌의 모역 사건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
  •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
  • 만파식적
  • 고구려인, 백제인, 말갈인을 포함한 군대인 9서당을 편성
  • 감은사 건립

 

기출 문제 키워드

 

2024년 제7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한국사 시험 모음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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