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번 문제
32. (가) 기구를 통해 추진된 정책으로 옳은 것은? [2점]
선생님: 이곳은 기기창 건물 중 하나인 번사창입니다.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정부는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고 개화 정책을 총괄하기 위한 기구로 |
① 별기군을 창설하였다.
② 원수부를 설치하였다.
③ 대전통편을 편찬하였다.
④ 신문지법을 공포하였다.
⑤ 서당 규칙을 제정하였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해설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1881년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① 별기군을 창설하였다.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다.
② 원수부를 설치하였다.
1897년 조선 정부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했다.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③ 대전통편을 편찬하였다.
조선 정조 때 대전통편이 편찬되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④ 신문지법을 공포하였다.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⑤ 서당 규칙을 제정하였다.
1911년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였다.
1918년 일제는 <서당 규칙>을 통해 서당 설립을 인가제(허가제)로 바꾸었다.
따라서 보기의 내용은 옳지 않다.
정답은 ①번이다.
| 개화 정책의 추진 |
개항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을 두고 침략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조선 정부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이 정책을 전담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1880년). 그 아래에 12사를 두어 외교, 군사, 산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하지만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은 폐지되었다(1882년).
기존의 5군영을 무위영, 장어영의 2영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신식 군대의 양성을 위하여 별도로 별기군을 창설하였고, 일본인 교관을 채용하여 근대적 군사 훈련을 시키고, 사관 생도를 양성하였다.
기기창(1883년, 무기 제조 기관), 박문국(1883년, 인쇄, 출판 기관,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1883년, 화폐 발행 기관) 등의 근대 시설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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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사절과 시찰단 파견 |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정부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기술과 정보를 조사하였다.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일본의 근대 시설을 시찰하였다(1876년).
일본과의 조약 개정을 위해 파견된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일본의 발전상을 살펴보고 돌아왔다(1880년). 이때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영효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정부는 1881년에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유길준 등을 비밀리에 조사 시찰단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제도와 법률, 공장 등을 조사하고 국왕에게 보고서를 올려 개화 정책의 자료로 삼게 하였다.
정부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임명하여 중인 자제들을 이끌고 청에 가서 무기 화약 기계 제조법을 배우게 하였다.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인원이 줄고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들은 일찍 돌아오게 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이 설치되었다.
정부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과 수교한 이후 미국에 답례 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하여 근대 시설을 살펴보게 하였다(1883년). 민영익, 유길준, 홍영식, 서광범 등이 파견되었다. 유길준은 귀국 후에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서양 근대 문명을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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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던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1897년).
고종은 그동안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라 고친 다음, 왕을 황제라 칭하여 자주 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하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했다(1897년).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인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방향은 “옛 제도를 근본으로 하고 새로운 제도를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있었다.
대한제국은 1899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이를 통해 대한 제국이 전제 정치 국가이며, 황제권의 무한함을 강조하고,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외교권 등을 모두 황제의 대권으로 규정하여 전제 군주 체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대한 제국은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지아문과 지계아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전국 토지를 측량한 후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상공업 진흥책이 실시되어,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서 근대적인 공장과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실업 교육이 강조되었고, 근대 산업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외국에 유학생이 파견되었으며, 각종의 실업 학교, 상공 학교와 기술 교육 기관도 설립되었다.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하였다. 또한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무관 학교를 설치하여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1899년 대한제국은 <대한국 국제>를 근간으로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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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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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박영효가 주도한 박문국에서 순 한문체로 발행된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관보의 성격을 띠었으며,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되었다.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된 한성순보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행되었다. 최초로 신문에 상업 광고가 게재되었다.
최초로 민간에서 간행한 신문은 독립신문이었다.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대중을 계몽하여 근대화를 촉진하려는 한글판과, 외국인에게 우리의 처지를 홍보하는 영문판으로 발행되었다.
1898년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황성신문은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을사늑약을 비판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문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주로 구독하였다.
제국신문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간행되었는데,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신문지법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어용 단체인 일진회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는 등 민족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이다. 연해주 지역으로 망명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권 회복과 러시아 한인 계몽을 위해 <해조신문>을 창간하였다. <해조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海蔘威)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신문이라는 의미였다.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되었다.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통감부의 극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설을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의병 활동 등 민족 운동에 관한 기사를 많이 실어 민족의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친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만세보는 천도교 기관지로,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되었다.
1907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만들어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그러다 1908년 통감부는 신문지법을 개정하여 제국신문과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인 대한매일신보를 규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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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강탈 이후, 일제는 식민 통치의 중추 기관으로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여 한민족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현역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임명되어 식민 통치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은 일본 국왕에 직속되어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및 군대 통수권까지 장악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자문 기구로 중추원을 두어 한국인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는 한반도에는 일본군 2개 사단과 2만여 명의 헌병 경찰 및 헌병 보조원을 배치하여 강력한 헌병 경찰 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헌병 경찰 통치를 통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민족 지도자들은 체포, 투옥, 학살당하였다. 또, 일반 관리는 물론 학교 교원들에게까지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하였던 것은 위협적인 헌병 경찰 통치의 한 수단이었다.
일제는 헌병 경찰에게 사소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즉결 처분권을 부여하여 우리 민족을 태형(조선 태형령 1912년)에 처하기도 하였다.
1910년대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을 강제 폐간시켜 민족 언론을 탄압하였다.
일제는 제1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하여 한국인의 교육을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중심으로 편성하여 고등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였다. 또한 민족 교육을 강조하던 사립 학교를 탄압하였다.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4년으로 규정하였다. 1918년 일제는 <서당 규칙>을 통해 서당 설립을 인가제(허가제)로 바꾸었다.
일제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날조하여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신민회를 해산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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